네팔 돌포의 소금 캐러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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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선택한 소금 캐러밴

돌포는 티벳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199년 중국의 티벳 침략과 그에 따른 달라이 라마의 망명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내돌포로 몰려들면서 정작 티벳 땅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원시 애니미즘이 이곳에서는 온전히 살아남게 되었다. 돌포 지역은 셰이 폭숨도 공원으로 들어와서는 해발 5천m의 카그마라 고개를 경계로 북쪽의 내돌포(Inner Dolpo)와 외돌포(Outer Dolpo)로 나뉘어진다.

외돌포와 내돌포는 문화와 종교, 인종, 풍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외돌포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원시림이 수해를 이루고 농사가 잘 되는 반면 내돌포는 메마르고 황량한 고원지대이다. 돌포에 사는 사람들을 돌포파라고 하는데, 계곡을 중심으로 농경생활을 하는 외돌포의 힌두교도 롱파(Rong-pa)와 4천m가 넘는 고원지대에서 야크를 기르면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내돌포의 불교도 드록(Drok-pa)로 나뉘어진다

겨울이 오면 내돌포 지역은 대부분 눈으로 뒤덮인다. 5개월이나 되는 긴 겨울 동안 내돌포에서는 야크를 먹일 수가 없기 때문에 첫눈이 내리면 드록파들은 마을을 지키는 몇몇 가족만을 남겨둔 채 야크를 몰고 롱파가 사는 히말라야 너머의 남쪽 계곡으로 내려와 겨울을 보낸다.

이들은 산을 내려올 때 티벳에서 들여온 소금을 야크에 싣고 와서 롱파들이 경작한 옥수수 등의 곡식과 교환하여 양식을 장만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1년에 두 번씩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야 하는 드록파의 소금 캐러밴은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 방법이다. 대략 한 달이 걸리는 이들의 캐러밴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카그마라 고개 정상에서 만난 락상 노인의 일행은 아들과 딸 가족 등 모두 12명의 대식구였다. 락상의 며느리가 12주일 전 캐러밴 도중에 아기를 낳아 사흘을 지체하느라고 속도가 뒤쳐져 있었다. 돌포의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에 동화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족들은 이른 아침 야영지를 떠나 오후 늦게 다음 야영지에 도착할 대가지 계속 야크를 몰아야 하므로 어느 한순간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니 부모들이 아이를 돌볼 틈이 없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소금 푸대로 바람막이를 쌓고 그 안에 오순도순 모여 매서운 추위를 피한다.

설산을 헤매는 눈표범들이 아직도 종종 눈에 띄는 돌포는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야크를 길러서 옷을 만들고 신을 짜며 야크의 젖과 고기로 살아가는 돌포파의 삶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자연에 묻혀서 자연의 이루가 되어 살아가는 이드의 생활은 21세기에 들러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는 자동차 도로가 이 히말라야의 오지에까지 뚫리기 전까지는.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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