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루해의 바다집시 (Sea Gypsies of Sulu Archipelag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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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종교도 없이 떠돈다

바자우족의 수는 대략 1만5천 명. 원래는 필리핀의 술루 군도에서 살고 있었으나 언제부터인지 바다로 내몰려 땅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바자우족이 바다로 나간 사이 그들이 살던 육지는 스페인, 미국, 일본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술루해는 오랜 옛날 해적들이 활동했던 바다이고 최근 수십 년간은 필리핀 정부에 대항하는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의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육지에서 외국인에 내몰리고 바다에서 해적에 쫓기면서도 바자우는 용케도 바다에서의 삶을 개척했다.

바자우들은 언제나 육지에 집을 짓고 살기를 원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섬에는 타우수그, 사말과 같은 이슬람 부족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함께 살기가 곤란하다. 뭍에 오르고 싶은 이들의 소망은 죽은 후에나 겨우 실현이 된다. 바자우족들은 술루해의 한 섬을 정하여 사람이 죽으면 이 섬에 시신을 매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람들

인류학자들은 바자우족을 전 세계의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순하고 착한 사람들로 꼽는다. 외부 사람들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화를 내거나 돈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이 많지만 바자우는 그저 수줍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들 사이에는 싸움이 없고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많다. 이들은 어제의 슬픔과 걱정을 오늘까지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바자우는 배를 몰 때나 고기를 잡아 올릴 때 언제나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하지만 이들에게는 태평양의 다른 소수민족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전투의 노래나 복수의 노래가 없다.

떨어지는 태양빛이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수앙푸쿨 마을의 두세 평 남짓한 나무 깔개 마당에 동네 여자 서너 명이 모여 아기를 어르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그녀들이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남편들이 탄 고기잡이 배가 돌아오는 것이다. 햇빛에 그을리는 피부를 보호하려고 쌀가루를 개어 만든 ‘보락’을 희게 바른 얼굴에 환한 웃음이 퍼진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여인네들은 주황색 열대어가 들어 있는 냄비를 들고 저녁밥을 짓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나무다리를 건너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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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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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나서 물에서 죽는 바다의 떠돌이, 바자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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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파에 사는 우말라니씨 가족

먼 바다로 나가 바자우족의 고기잡이를 구경하다 하우스보트 한 척을 만났다. 바자우족들이 ‘레파’라고 부르는 하우스보트는 이들이 수상가옥을 짓기 전까지 집으로 삼고 살던 커다란 돛배이다. 지금까지도 바자우족 가운데 레파를 타고 물 위를 떠도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데 배의 한쪽 끝에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 화덕과 함께 부엌이 차려져 있어 그야말로 움직이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스무 살이 넘은 바자우 사람은 누구나 레파에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10여 미터 길이에 폭이 넓어 다른 고기잡이 배에 비해서는 꽤 큰 편이기는 하지만 지난 세대까지 바자우인들이 이런 배 위에서 일생을 보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앞뒤에 조각을 하여 한층 멋을 낸 이 레파에는 우말라니 부부와 아들 하나, 세 식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남편은 허리춤에 맨 줄을 배에 연결 한 채 물 속에 잠수하여 고기를 잡는 중이고 달리 놀잇감이 마땅치 않은 아이는 물고기를 손질하는 엄마를 거들고 있다.

바자우족들이 고기를 잡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술루 제도의 섬에 자라나는 ‘따후’라는 나무의 뿌리에는 고기를 마취시키는 성분이 있다. 따후를 망치로 두들겨 짓이긴 후 이것을 들고 반경 20여 미터의 물 속을 헤엄쳐 다니면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이 제각기 비실비실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3~4분쯤 지난 후 커다란 체를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간 우말라니는 한 번에 20여 마리 씩의 커다란 고기를 건져내어 배 위에 쏟아부었다. 배 위에 잡혀온 고기들은 한참을 기절한 채 있다가 나중에야 깨어나서 퍼덕거린다. 따후의 독은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다니 이처럼 쉬운 고기잡이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우말라니는 바람이 불면서 물결이 일자 서둘러 물에서 나와 돛을 올린다. 바자우들은 변화무쌍한 술루해의 기상에 언제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술루해는 태풍이 처음 만들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의외로 일년 내내 바다가 잠잠한 편이다. 그러나 때로는 큰 풍랑이 일어 재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바자우에게 있어 대자연은 생의 동반자이자 거역할 수 없는 위대한 힘으로 군림하고 있다.

 
바람과 바다를 읽어내는 재주

태어나면서부터 바람과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바람과 함께 일하고 함께 하는 법을 배운다. 바람과 바닷물을 관찰하여 풍랑의 정보를 예견하고 바닷물에 손가락만을 담가보고서도 지금 있는 곳이 어디쯤이며 목적지에 얼마 후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땅에 사는 우리들이 땅 위의 여러 지형에 무슨 고개, 무슨 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이를 기억하는 것과 같이 바자우족은 누구나 머리 속에 바다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이들은 멀리 셀레베스해(인도네시아 중부에 위치한 대순다 열도의 셀레베스 섬 북쪽 바다)까지 고기잡이를 나가기도 한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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