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10 - 서천불동의 벽화
(Mural at West Thousand Buddha Valley, Dunhuang, Gansu Prefectur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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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6 - 막고굴
(Mogao Caves at Dunhuang, Gansu Prefecture, China)













명사산이 자연의 수수께끼라면 돈황석굴은 인간이 만든 수수께끼다.
실크로드의 중요한 중개기지였던 돈황에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 즉 오늘날의 인도를 오간 구법승과 교역품을 싣고 다니던 캐러밴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이리하여 융성하게 된 경제력과 축적된 부는 돈황의 석굴군을 통하여 돈황예술이라는 꽃으로 피어나게 된다.
돈황 석굴군이란 돈황 지역 일대에 산재한 막고굴, 유림굴, 서천불동, 동천불동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석굴들을 총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막고굴은 명사산의 남쪽에 위치한다.
서기 4세기부터 무려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무명의 민초예술가들이 이곳에 굴을 파고 그림을 그렸다.
천축국을 오가던 구법승을 통해 인도 석굴 예술의 영향을 받은 듯, 돈황의 석굴은 크게 예배굴인 차이티야와 승방굴인 비하라로 나뉜다.
차이티야는 불상을 모시고 벽화로 치장한 후 예배를 하던 굴이며 비하라는 예배굴에 가서 벽화를 그리거나 수도를 하던 승려들이 거주하던 굴이다.
현재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막고굴의 오른편에는 아직 공개가 안된 비하라 석굴군이 있다.

500여개에 달하는 막고굴의 많은 동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장경동으로 알려진 제17굴이다.
청나라 시대, 막고굴 앞의 절을 관리하던 도교 도사인 왕원록은 16굴에 쌓인 모래를 청소하다 우연하게 17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17굴은 16굴의 초입에 위치한 꼬마 동굴이다.
가로 세로 각각 3m가 채 안되는 작은 공간에, 벽화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 보잘것 없는 굴이 그토록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이곳에 가득 보관되어 있던 엄청난 양의 고문서 때문이다.
한문, 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 쿠차어, 호탄어, 티베트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인 문서는 도합 4만여 점에 달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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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5 - 명사산 고분군
(Ancient Tumuli at Dunhuang Desert, Gansu Prefecture, China)




명사산 정상에 올라 돈황 시가지 방향을 바라볼 때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사막에 끝간데 없이 펼쳐진 고분군의 장관이다.
중국 동북지방 집안현의 고구려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황무지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분묘의 수는 수천개를 헤아린다.
둔황 사막의 고분군은 진나라 시대의 것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 있고 사이사이에 현대의 분묘도 섞여있다는 점이 고구려 고분군과 다르다.
오래된 고분은 세월의 풍화를 겪으며 봉분이 사라지고 야트막한 둔덕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날고 긴다는 도굴꾼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정보 없이 왕묘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도굴꾼이 고고학자들보다 정보의 입수나 기동성 면에서 한발 앞섰다.
고고학자들이 발굴작업을 했을 때 웬만한 분묘는 이미 다 도굴이 된 후였다.
그 중 5호16국 시대의 왕묘는 1986년 도굴꾼의 발굴로 세상에 알려진 후 90년대에 들어서야 일반에 겨우 공개가 되었다.
이 고분은 사막 한가운데 뜷린 계단을 따라 지하의 묘실로 내려가게 되어 있는 구조다. 마치 이집트 ‘왕들의 계곡’에서 볼 수 있는 고분의 분위기를 풍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방인 덕에 고분 내부의 벽화는 1천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선명한 색조를 띄고 있었다.
주작과 현무의 형상을 비롯하여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사냥 장면, 세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 등 고구려 고분에 등장하는 그림과 거의 흡사한 벽화가 수두룩하게 그려져 있었다.
돈황과 고구려의 고분에 그려진 벽화의 동일성은 앞으로 해당 분야 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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