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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2 수단 북부 생명의 젖줄 나일강 (Nile River of Upper Sudan)

수단 북부 생명의 젖줄 나일강 (Nile River of Upper Sudan)



나일강이 일궈낸 황무지 문명 누비아

이집트와 수단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일강의 중류 지역을 ‘누비아’라고 부른다. 이 지역을 흐르는 나일강은 곳곳에 여울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서 각 여울마다 차례대로 1번부터 6번까지의 번호가 매겨져 있다. 제1급류에서 제6급류 사이에 위치한 누비아 지방은 고대 이집트와 함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누비아 문명의 발상지이다.

누비아 문명은 기원전 3천8백 년경에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동안 이집트 문명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해 왔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생산되는 상아나 모피와 같은 무역품이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로 운반되는 길목에 위치한 누비아 지역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크고 작은 여러 왕국들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등 역사의 흥망성쇠가 되풀이되어 왔다.

특히 제4급류 부근에 번성했던 쿠시 왕국, 5번과 6번 급류사이에 생겨났던 메로에 왕국은 찬란한 황금 유물과 함께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유사한 생김새의 피라미드를 유적으로 남겨 놓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하류에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하지만 정삼각뿔에 가까운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해 직삼각뿔로 만들어진 누비아의 피라미드 쪽이 더욱 건축적인 긴장미를 자아낸다.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 황무지 사헬

지금 누비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은 자알린족이라는 이슬람 계의 소수 민족이다. 이들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진 거리는 아니지만 사막을 뚫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르툼에서 북쪽으로 이집트 국경에까지 이르는 북부 수단은 광활한 사막 지대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이곳을 ‘사헬’ 이라고 부른다. 북아프리카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사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인데, 사헬은 이 사하라의 외곽을 에워싸고 있는 반건조 지대의 황무지를 가르킨다. 아랍어로 ‘주변부, 가장자리’라는 뜻으로 사하라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기도 하는 사헬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몽골의 초원지대 사막을 ‘고비’라고 부르는 것처럼 단단한 땅에 적당히 모래가 섞인 형태의 사막을 일컫는 일반명사이다.

이 사헬은 북아프리카 서쪽 끝의 모리타니아로부터 시작하여 홍해와 만나는 최동단의 이집트까지 거의 5천여 킬로의 먼 거리에 걸쳐 뻗어있다. 북부 수단의 사헬은 윗쪽의 누비아 사막과 아랫쪽의 바유다 사막으로 나뉜다. 하지만 수단 사람들은 그런 구별 없이 그저 사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사막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단 바유다 사막에 들어서면 길은 금세 사라지고 몇 미터 간격으로 열을 지어 하나씩 놓여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돌만이 북쪽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줄 따름이다. 사막 안에서 지도란 있으나 없으나 결국 마찬가지가 된다. 방향을 표시할만한 적당한 지형지물이 없으니 지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황무지에 어지럽게 나있는 길들은 최근 들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알게 모르게 모래가 점점 많아지면서 서서히 길을 덮어가고 있는 것이다. 길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숲에 에워싸였던 옛날 마을들도 천천히 모래더미 속에 파묻혀 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사막화 현상은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하라와 달리 사헬 지역에서는 연간 강수량이 수백mm나 되는 곳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비가 내리기 때문에 약간의 농사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물기가 하늘로 증발해 버린다는 데 있다. 비가 내리면 평소 건조한 상태로 있던 ‘와디’ 라는 개천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다가 이내 말라버리고 습기라곤 간 곳이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사헬에서는 가뭄이 피해갈 수 없는 재난이다. 자연적으로 목축이 이루어지는 사반나 지대와는 달리 사헬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목축활동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무분별한 시도가 낳은 사막화

전통적으로 사헬의 유목민들은 그 동안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시스템 안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 왔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헬 지역의 목축민들은 비를 따라서 우기에는 북쪽으로 이동했다가, 건기에는 보다 남쪽의 초원지대를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가축을 키워왔다. 이러한 균형은 50년대와 60년대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깨어지기 시작했다.

신생 독립 국가들은 정책적으로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금지시키면서 사막을 농경지로 전환시킨다는 명목 아래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때까지 멀쩡하던 이곳의 연약한 환경 시스템에는 곧장 빨간 불이 켜졌다. 농경지가 많아지면서 여기저기서 물을 끌어다 쓰자 곧 우물이 말라버리고 만 것이다. 토양 또한 순식간에 황폐해졌다. 대지가 초원으로 덮여 있을 당시에는 낮에 뜨거운 태양빛을 받았던 땅이 밤에 식으면서 습기를 증발시켜 구름을 만들어내곤 했으나, 이제 그 프로세스가 없어지면서 본격적인 사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몬순기가 되어도 사헬 지역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이 점점 적어졌고, 이는 장기적인 가뭄으로 이어졌다.

“내 아들은 지금 다섯 살인데 그 아이는 태어난 이후 비가 내리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답니다. 이 지겨운 가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어요.”

제벨 카누 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하면서 치를 떨었다.

하르툼 북쪽 제벨 카리 지역은 황무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한 떄 마을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나무들은 말라 죽은 지 오래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추운 겨울밤을 보내기 위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가져다가 불로 태워버린 후 새로운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쟈알린족의 본거지인 셴디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은 몇십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주변의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이 마을은 온통 푸른 숲에 둘러싸여 있었지요. 마을 한가운데로 개울이 흘렀었는데 다 말라 버렸어요.”

숲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쓰기 시작하자 그나마 비료가 없어진 토양은 더욱 메말라 갔다. 사헬지역에서 사용되는 90% 이상의 에너지는 나무를 태워서 나온다. 1950년대 이후로 사헬 지역에서 나무가 절반 이상 사라졌다는 한 통계는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의 시스템을 바꾸려 들었던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늘이 선사한 선물, 나일강

사헬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바유다 사막의 쟈일린족들은 하늘이 선사한 큰 은혜로 인해 그 같은 불행을 겪지 않고 있다. 그 은혜란 바로 사막 한가운데를 흐르는 나일강이다. 나일강은 신에게 버림 받은 듯 메마르고 황량한 북부 수단의 사헬에 생명을 내리는 파이프 라인이다. 이디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청나일강과 ‘달의 산’으로 불리우는 우간다의 루웬조리 산에서 시작되는 백나일강은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서로 만난 후 이곳에서부터 대하가 되어 바유다 사막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흘러 지중해로 향한다.

나일강이 흐르는 강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며, 어느 정도의 농경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사막을 관통하는 나일강 덕분에 하류지역의 델타에서 발흥한 고대 이집트 문명이 강줄기를 타고 상류로 올라와 누비아 문명과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일강은 누비아 지역에서 크게 S자를 그리며 흐르는데, 사람들은 이 같은 나일강의 흐름을 빗대어 ‘강물도 사막에서 길을 잃어 이리저리 헤맨다’ 고 농담을 한다. 사막 속에 큰 강이 흐르는 신기한 지역 누비아. 이곳의 쟈일린족 주민들에게 나일강은 신이고 어머니이며 생명의 젖줄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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