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Gypsy with Nikon D90


진행 : 심은식, 김주원 기자

촬영, 글 : 박종우
촬영장소 : 안다만해
촬영지원 : 니콘 이미징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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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살지 못하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바다집시. 지구상에는 세군데 지역에 이 바다집시들이 나뉘어 살고 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 안다만해의 모켄(Moken)족, 필리핀과 보르네오 국경, 술루해의 바자우(Badjau)족,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섬 모잠비크해의 베조(Vezo)족이 그들이다.

세 군데의 바다집시들은 생활방식과 민속이 비슷한 점이 많아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원래 고향이던 말레이시아 해변으로부터 몬순에 의해 생겨나는 취송류를 타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이주해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바다집시는 해상에 떠 있는 배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물 위에서 살아가며, 죽은 후에야 비로소 육지에 묻히게 된다. 바다집시는 보통 산호초 지대의 얕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지만 건기에는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우기에는 작은 섬의 해변에 지어놓은 집에 머물며 몬순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10여년 전부터 술루해의 바다집시 생활을 기록해온 나는 2004년말 쓰나미가 닥칠 당시 우연히 태국에 있다가 현지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모켄족 작업까지 시작하게 됐다. 안다만해의 모켄족은 쓰나미가 있던 날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바다에 대한 탁월한 예견으로 해일이 닥칠 것을 짐작하고 산으로 대피하여 인명 피해를 내지 않음으로써 전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쓰나미는 그후 바다집시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바다가 위험하다고하여 태국 정부에 의해 육지의 난민 캠프로 소개된 이들 모켄족은 본토에 남으려하는 젊은층과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연장자층 사이에 세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육지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젊은이들은 고달팠던 바다의 기억을 잊으려는 반면에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기성세대는 답답한 육지를 벗어나 삶의 터전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쓰나미 이후 3년간 수시로 모켄족의 갈등과 마지막 바다생활을 기록해나가던 중 10월에 이들의 이야기를 TV다큐멘터리로 소개하게 되어 마지막 촬영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소식을 듣고 포토넷과 니콘에서 새로 출시되는 D90으로 작업을 하면서 프리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그동안 바다집시를 취재하러 갈 때마다 비디오 촬영장비에다 스쿠바 장비까지 합해져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짐의 무게는 늘상 100킬로에 육박했었다. 그런데 가볍기로 소문난 D90을 써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포토넷 원고 마감날인 10월 17일까지 어림잡아 1주일 정도의 현지 취재 기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덜컹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현지에 와보니 상황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몬순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안다만해는 거칠기 짝이 없었고 어선들도 항구에 발이 묶인 채였다. 매일 오후 스콜이 쏟아져 내리면 강풍이 불면서 바다는 성난 파도를 해변에 쏟아부었다. 무작정 취재 약속을 하고 온 것을 후회했으나 이제 와서 서울에 연락할 길도 없고 마감일은 숨통을 조이듯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나흘을 기다린 후 드디어 비가 그쳤다. 소형 선박의 출항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였지만 막무가내로 사공을 구슬러 겨우 쪽배를 띄울 수 있었다. 한국의 추석날 아침이었다.

망망대해로 나가자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비까지 내렸다. 파도가 뱃전에 부딪칠 때마다 물보라가 쏟아져 들어왔다. 배를 덮치는 거센 파도를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장비를 꺼내는 순간 바닷물을 뒤집어쓸것 같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목적지인 수린섬까지는 60킬로. 보통은 5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느라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드디어 도착한 수린섬. 2년전 마지막 왔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급한 마음에 비디오 카메라와 D90을 꺼내 취재를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기울더니 곧 어둠이 찾아왔다.

안다만해 수평선 위로 한가위 보름달이 떠올랐다. 이곳의 추석 달도 한국의 보름달처럼 휘영청 밝다. 잔잔한 바다는 달빛을 받아 금빛 물결을 일으킨다. D90의 노이즈 억제력이 발군이라던데, 테스트 삼아서 ISO3200에 세팅을 하고 보름달 달빛만으로 촬영을 했다. 정말 대단하다. 밤 10시에 촬영했는데 노이즈가 거의 없는 사진이 마치 대낮처럼 찍혀 나왔다. 이 카메라 누가 설계했지? 이런 물건이 자꾸 생기니 사진가들은 점점 작업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오지에 취재가면 밤에도 쉬지 못하게 될게 불을 보듯 뻔하다. 디지털 카메라로 바꾸면서 잠 자야 할 밤시간에 파일 정리하느라고 가뜩이나 잠이 모자란데 정말 걱정이다.

D90의 동영상 촬영기능인 D-Movie는 한국에서 하루 테스트를 해보고 온 덕분에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카메라 바디 뒤편의 LV (라이브뷰) 버튼을 눌러 모니터에 화상을 띄우고 OK버튼만 누르면 동영상이 촬영된다. D90의 동영상 촬영은 24fps의 Motion-JPEG 모드로 기록이 된다. 즉 1초에 24장의 JPG사진을 촬영하여 움직이는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질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하나 결정적으로 자동 초점이 지원되지 않는 점이 불편하다. 그러나 영화용 카메라는 원래 자동 초점이 안되는 것이 매력이다. 비디오 카메라가 하나의 줌렌즈만 장착되어 있는 반면에 D90은 여러 가지 교환렌즈를 사용할 수 있어 마치 영화를 촬영하듯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평으로 팬닝을 할 때 화면이 울렁거리는 롤링 셔터 현상이 있으나 팬닝의 속도를 느리게 하여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동영상을 촬영할 때는 CCD가 열을 많이 내기 때문에 연속으로 5분이상 촬영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필드에서 5분씩 연속촬영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내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다.

HD화질로 기록할 경우 저장매체인 SD카드에 담을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평소 CF카드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니콘에서 3개의 SD카드를 빌려왔는데 저장공간을 아껴가면서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비디오와 스틸 작업을 병행하다보면 2기가짜리 SD카드는 금새 차버렸다. 파도에 젖을까봐 여러 가지 충전기와 노트북 컴퓨터를 섬에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도 화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섬에는 전기가 없어 장비가 있어도 충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사공이 오전 밀물 시간에 섬을 빠져나가야만 한다고 성화를 해댔다. 하늘도 다시 꾸물거리며 언제 변덕을 부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수린섬이 출입통제기간이라 외국인이 상륙한 것을 당국이 알게 되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이날 아침 모켄족이 바다 속을 잠수하여 작살로 고기를 잡는다고 해서 따라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하는 수 없이 바다집시들이 수중에서 사냥하는 것을 1시간 남짓 촬영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던 1박2일의 취재. 그러나 D90이 있어서 행복했다. 육지에 돌아가 인터넷을 통해 마감을 하고 나면 다시 다른 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번에는 마감 걱정없이 마음대로 원하는 사진을 촬영해볼 계획이다. 날밤을 새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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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Jongwoo / OnAsia
(
http://docu.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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