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서부 알타이 지방의 카자흐족 (Kazakh Nomad of Altai, Western Mongol)
Gallery/Asia 2008. 10. 14. 22:27 |몽골 서부 알타이 지방의 카자흐족 (Kazakh Nomad of Altai, Western Mongol)
  
흐르는 물처럼 사는 사람들
끝없이 펼쳐진 풀밭 위에서 말을 타고 가축을 모는 유목민.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연상하는 것은 푸른 초원의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몽골은 평평한 초원지대라기보다는 평균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산악국가다. 특히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3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몽골의 서쪽 끝은 알타이 산맥의 중심부로서 4,653미터 높이의 타반보그드 산을 비롯, 4,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는 험준한 지역이다.
바얀울기 아이막(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몽골의 행정단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몽골에서도 가장 오지중의 오지에 속한다. 이곳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찾아 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몽골의 철도는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중단선로가 유일하기 때문에 동서로 넓게 퍼진 국토의 서쪽 끝으로 가려면 비포장 자동차 길을 달려 며칠을 가거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울란바타르로부터 바얀울기 아이막의 행중중심지인 울기까지는 일주일에 두 차례 비행기가 다닌다. 그나마 단번에 가는 항공편은 없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고물에 가까운 러시아제 프로펠러기는 도중 두 곳의 경유지를 지났고 그때마다 양고기 푸대를 싣고 내리는 소란으로 인해 비행기에서 내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부 몽골의 여기저기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진 곳이 많았다. 그러나 서쪽을 향해 가면 갈수록 숲은 점점 적어지고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과 구릉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 울란바타르를 출발했는데 울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울기 공항 청사를 나서자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 마디로 ‘황량한 서부’였다.
울기 시내를 벗어나자 헐벗은 바위산 사이로 초원이 펼쳐졌다. 그러나 초원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부드러운 풀들이 자라나는 초원하고는 거리가 멀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메마른 땅에 자라는 가시나무에 가까운 풀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는 길이 따로 없다. 대강 목적지의 방향을 잡고 다른 자동차의 타이어 자국을 가늠하여 눈짐작으로 길을 찾는다.
유목인 카자흐들의 이사행렬
바얀울기에서도 가장 서쪽 구석의 알타이 산록.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로 산지초원이 형성된 이곳은 유목생활로 살아가는 카자흐족의 거주지이다. 카자흐족은 1920년대에 중국의 신쟝 위구르 자치구에서 이주해 온 투르크계 소수민족으로, 이들이 많이 모여 사는 바얀울기 아이막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몽골어와 카자흐어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카자흐족은 몽골의 다른 종족들처럼 유목을 기반으로 살아가지만 언어나 풍습은 크게 다르다.
알타이 산맥 너머는 이들의 본향인 카자흐스탄이다. 그러나 서부 몽골의 카자흐인들은 고향땅의 사람들보다 더욱 카자흐인답게 살고 있다.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가축을 돌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말에서 내려 메카를 향해 절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부 몽골의 유목 방식은 몽골의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는 스텝식 유목이 아니고 계절 이동을 하는 산악형 유목이다. 이들은 여름철에는 해발이 높은 산록으로 올라갔다가 추위가 심해지면 저지대에 형성된 동영지로 내려와 겨울철을 보낸다. 대부분의 카자흐족들도 이같은 유목패턴을 따르는데, 최근에는 동영지에 아예 마을을 형성해 베이스캠프로 삼고 초원을 순회하는 반 유목 생활을 하기도 한다.
한번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 짧게는 20-30킬로에서 멀게는 100킬로 이상씩 이동하기도 한다. 알타이 산록의 초원에서 길 아닌 길을 달리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카자흐인들의 이사행렬을 마주치게 된다. 여러 가구가 모여 하나의 유목집단을 이루는 이들의 이사 장면은 장관을 연출한다. 때로는 그 행렬이 2-3킬로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오치사르의 가족은 가뭄으로 물이 말라서 원래 살던 곳으로부터 남쪽으로 60킬로 떨어진 계곡 초원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다. 네 가구 13명이 17마리의 낙타와 6백여 마리의 양, 1백여 마리의 말을 이끌고 이틀간의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남자들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뛰며 가축들의 방향을 인도하고 아낙네들은 텐트와 가재도구를 등에 가득 실은 낙타떼를 몰고 있었다. 말을 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나무상자에 넣어 낙타 등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고양이와 함께 상자 속에 앉아 낙타에 매달려 있는 여자 아이는 이미 이 같은 생활에 단련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사에 동원된 낙타는 한 마리가 2백여 킬로그램의 짐을 옮긴다. 몽골의 낙타는 혹이 두 개 있는 박트리아 쌍봉낙타이다. 인도나 북아프리카 지역의 낙타에 비해 몸집이 훨씬 더 크고 털이 길어 기품이 당당하다. 매서운 추위도 이겨내는 강인한 박트리아 쌍봉낙타야말로 서부몽골의 유목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오치사르의 가족은 거대한 돌산 사이에 펼쳐진 초원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가를 새로운 야영지로 정했다. 거처가 정해지면 우선 이동식 천막인 게르부터 세운다. 게르는 골조를 이루는 수많은 나무막대기와 이 막대기로 만든 뼈대를 덮는 펠트제의 두터운 천으로 나뉘어진다. 카자흐족의 게르는 다른 몽골인들의 천막에 비해 훨씬 크기고 크고 화려하다. 따라서 구조도 복잡하고 부피와 무게도 훨씬 더 나간다.
가족들은 낙타에서 텐트를 내린 후 남녀노소가 함께 익숙한 솜씨로 집을 만들어 나갔다. 먼저 큰 기둥 두 개를 세우고 나무 막대기를 그물 모양으로 엮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울타리를 둥글게 친 다음 기둥 위에 올린 원형의 천정과 울타리 사이를 80여 개의 긴 나무로 연결했다. 이렇게 해서 틀이 짜여지면 그 위에 펠트로 만든 덮개를 둘러씌우고 하얀 천을 덮은 후 끈으로 둘러매어 고정시킨다. 하나의 게르가 완성될 때 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 게르의 복잡한 구조를 감안하면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한 가족이 살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곧이어 난로와 연통이 설치되고 불을 지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물이 펄펄 끓고 수태차가 만들어진다. 수태차는 끓는 물에 차와 버터를 섞은 넣은 것으로, 몽골 유목민들은 쉬지 않고 이 차를 마신다.
“이같은 이동을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 합니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기 때문에 집을 옮기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시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들던 며느리가 야무지게 말했다.
1년에 10여 차례나 이동을 하므로 짐이 많으면 거추장스럽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가재도구는 꼭 필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난로와 식기 몇 가지, 나무 궤짝 서너 개, 이불과 늘상 입는 옷가지 정도가 전부다. 
하찮은 물건도 대접 받는 사연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 없다는 점은 유목민족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 제국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제국의 수도였던 중부 몽골의 카라코람에는 당시 유적으로 작은 돌거북 4개만이 남아 들판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행태는 유목민들의 태생적 검소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목경제의 비자급자족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목민들은 유목생활만을 통해서는 모든 생필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정주사회로부터 물품을 들여오게 되는데, 이 때문에 모든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정주문명의 소비세계에 살다 온 사람에게는 이런 광경이 낯설기 마련이다. 게르 주변에서 촬영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난 필름 통을 던져 버렸더니 아이들이 조르르 달려와 얼른 주워 갔다. 하찮아 보이던 필름 통도 여기서는 꽤나 쓸모 있는 물건인 모양이다. 그 뒤로는 꼬박꼬박 필름 통을 챙겨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게 되었다.
한번은 오치사르에게 서울에서 가져간 양말을 선물로 주었더니 그 포장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비닐봉지 속에서 양말을 꺼내더니 포장용 비닐봉지를 어디다 쓸까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쉽게 찢어지는 양말 포장용 비닐봉지는 내 눈에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작은 바구니를 열더니 신분증명서를 꺼내 이 비닐봉지로 곱게 싼 후 “이제는 비를 맞아도 젖을 걱정이 없겠어요”라며 좋아했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물건이 없었다. 1회용 라면을 담는 얄팍한 플라스틱 용기와 참치 통조림 깡통 등등 서울 같으면 매정하게 쓰레기통으로 처박힐 많은 물건들이 요긴하게 사용처를 찾고 제자리를 잡았다. ‘수퍼마켓에서 쓰레기통을 사서 비닐봉지에 넣어 집으로 들고 온 후 담아온 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는 식의 서구식 소비방식은 이곳에서는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물건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되고 수명이 끝나면 다시 용도가 바뀌어 마르고 닳도록 쓰여지는 것이다. 게르 안에서건 밖에서건 쓰레기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에게 쓰레기통을 가져다주면 좋은 물건을 담아두는 통으로 고이고이 간직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음식 ‘차강이데’
유목민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음식문화에 있다. 몽골 유목민들의 음식처럼 간소하고 간단한 음식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메뉴는 극히 단순하여 평생을 변치 않는 메뉴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음식에선 도대체 쓰레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먹을 만큼 먹다가 남으면 보관해두고 나중에 다시 꺼내먹으면 그만이다.
유목민의 주식은 고기류와 유제품으로 구성된다. 유제품은 ‘흰색 음식’이라는 뜻의 ‘차강이데’로 불려진다. 하지만 서부 몽골 어디에서도 이 차강이데를 팔지는 않는다. 그 대신 아무리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이들 유목민이라 해도 손님이 게르를 방문하면 차강이데만큼은 반드시 대접한다. 차강이데에 속하는 유제품은 먹고 남으면 발효시켜 다른 유제품으로 만들 수 있어 버릴 일이 없다. 또 고기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만큼 잡고 남으면 말리거나 가루로 만들어 보관한다.
 
초원의 신성을 섬기고 그의 지시에 따라 이동한다
카자흐족의 유목생활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넓게 보이는 초원이라 하더라도 금세 풀이 거덜나게 되고 한번 황폐화된 들판을 다시 목초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유목생활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치사르와 같은 유목집단의 가장은 자기가 보유한 가축의 수와 현재의 초지 상태를 감안하고 앞으로의 기후 예측을 적절히 하여 이동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외부인의 눈에는 우리들이 아무 초원에나 가축을 풀어놓고 대충 풀을 뜯게 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초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요. 초원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잘 돌봐줘야 하거든요.”
과연 초원의 생태계는 기후에 무척 민감하다. 조금만 한발이 들면 목초가 그대로 말라죽고 비가 심하게 오면 그대로 홍수가 나 진흙밭으로 변한다. 유목민이 두려워하는 자연재해는 흰색재난(차강조트)과 흑색재난(하르조트)으로 나뉘는데, 차강조트는 폭설로 인해, 그리고 하르조트는 극심한 가뭄으로 풀이 자라지 않아 가축들이 굶어 죽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초원의 재해는 가축을 주된 식량원으로 삼고 있는 유목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초원을 신성시하고 더럽혀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유목 생활이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람과 동물은 한가지예요. 도시 사람들이 자손에게 돈을 남겨주듯 우리는 자손에게 초원을 남겨줍니다. 초원을 망치면 자손들을 망치는 것이죠. 그래서 초원을 자식처럼 돌봅니다. ‘풀이 없으면 가축이 없고 가축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는 속담을 늘 잊지 않죠.”
후세를 위해 초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유목민들. 그들에 비해 모든 것이 한없이 풍요롭고 끝없이 행복할 것 같은 현대 산업사회의 실상은 어떤가. 어느 나라에서건 쓰레기 처리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회용품의 사용이 점점 많아지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산더미처럼 나오며 상품을 잘 보이려는 목적의 과대포장이 넘쳐난다.
땅거미가 스며드는 초원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1회용 플라스틱 스푼을 내다 버리려니 마땅히 버릴 곳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개울로 가져가 스푼을 씻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공식품과 포장식품을 먹고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료수를 마시는 형태의 소비생활을 영위한다고 해서 행복이 그만큼 커지는 것인가. 우리가 가진 것들에 비하면 훨씬 보잘 것 없는 물건에도 만족해하며 삶에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을 갖고 아끼며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는 이들 유목민들. 이들의 생활방식은 어둠이 깔린 초원 속의 나를 흔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소비 지상주의로 일관하는 우리 정주문명권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너무 크다고 하면 비약일까.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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