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커피 마시는 아기 하마 제시카 스토리 

     3년 전 가을 어느 날, 남아공 동북부 지방을 흐르는 올리판트 강 지류에 살고 있던 토니와 엘사 주베르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집 앞 강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흘째 모잠비크 남부를 강타한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물살이 정원 쪽으로 파고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머리만 물 위로 내놓은 이상한 동물이 엘사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근처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인줄로만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름아닌 새끼 하마였다. 방금 세상에 나온 듯 배에는 탯줄이 그대로 달린 채였다. 주베르 부부 집에서 강 상류 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야생 하마들이 모여 사는 물웅덩이(Hippo Pool)가 있는데 그곳에서 갓 태어난 새끼 하마가 급류에 떠 내려온 것이 확실했다. 부부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다가 정성껏 보살펴주고 제시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 사흘 동안 어미만 찾으며 울부짖던 제시카는 나흘째 되던 날부터 엘사가 입에 넣어 주는 우유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시카는 주베르 부부와 한 식구가 되었고 마치 부부의 소중한 딸처럼 자라나게 되었다. 마침 토니는 은퇴 전까지 국립공원이나 환경국에 소속돼 야생동물 보호 관련 일을 하던 동물 전문가였다. 늘그막에 제시카에 정을 붙인 그는 새로 얻은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태어나자마자 사람에게 길들여진 때문인지 제시카는 자라면서 점점 애교가 더해 갔다. 토니가 저녁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소파 옆에 엎드려 TV를 보는가 하면, 급기야 부부의 침실에 들어와 함께 자겠다고 침대 위로 기어오르기까지 했다. 제시카의 몸무게로 인해 비싼 침대가 주저앉았지만 제시카에 대한 토니의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 뭍에 나온 하마는 피부 보호를 위해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리는데, 토니는 끈적끈적한 지방질의 이 분비액을 천연덕스럽게 손바닥으로 문질러 얼굴에 바르며 '제시카가 만들어주는 피부 보호 로션이 어느 고급 화장품보다 낫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제시카가 우유를 먹던 시절, 한번은 토니가 냉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는데, 제시카가 먹고 싶은 눈치를 보여 입에 넣어 준 적이 있었다. "커피를 얼마나 맛있게 마시던지 나도 놀랐습니다. 한번 맛을 보더니 더 달라고 계속 쫓아다니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덧 하루 10리터씩 커피를 들이키는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커피 먹는 하마'의 소문은 삽시간에 주변에 퍼져 제시카는 금세 유명 인사(?)가 되었다. 2년전 한살바기 제시카를 처음 만났을 때, 이 귀여운 새끼 하마는 한창 인기 절정이었다. 남아공은 물론, 한국 의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나오는가 하면 영화 출연 섭외가 들어오고, 심지어 잡지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낮 동안은 주로 강에서 관광객들과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 속에서 하마의 등에 타고 수영을 즐긴다는 신기한 소문은 더욱더 많은 관광객들을 제시카가 사는 집으로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제시카를 찾았더니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한동안 1백kg대를 유지하던 몸무게가 갑자기 불어나 5백kg를 훌쩍 넘었고 어느새 어른 하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발견되던 날 몸무게가 16kg에 불과했다니 그동안 30배 이상 자라났고 앞으로도 계속 살이 쪄서 곧 2000kg에 달할 것이라 했다. 이렇게 몸이 커지자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하마는 아프리카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공격적이고 위험스런 동물로 꼽힌다. 초식동물인데다 둔해보이는 외모 때문에 성질이 온순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큰 오해다. 사자 같은 맹수도 인간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법이지만 유독 하마는 자기 서식지에 접근하는 사람을 거칠게 공격한다. 움직임이 예상외로 민첩한데다 커다란 송곳니로 무장한 입도 가공할 괴력을 발휘한다.

     이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쥬베르 부부는 '처음 발견했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어미를 찾아줘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이제야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3살을 넘긴 제시카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사춘기에 이르면 새로운 성격이 나타나면서 불안한 행동을 보이곤 한다. "얼마 전 수컷 하마 몇마리가 집근처를 지나가는데 제시카가 상당한 호기심을 보이는 거예요. 전에는 야생하마가 접근하면 겁을 내면서 집 안으로 도망치곤 했거든요..." 주베르 부부는 제시카를 야생으로 돌려보냈을 때 과연 다른 하마와 잘 섞여 지낼 수 있을까, 혹시 무리를 이탈해 다른 농장으로 들어가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농작물을 해치는 하마들의 피해로 '농장에 침입한 하마는 사살해도 된다'고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주베르 부부는 제시카를 동물원에 보내지는 않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야생으로 돌려보낼 기회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몸무게가 1톤을 넘으면 제시카를 픽업트럭에 태워 정글 건너편 물웅덩이까지 이동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난처한 입장에 놓인 제시카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야생동물을 사육할 때 생기는 많은 문제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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