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8 - 유림굴 (Yulin Caves at Dunhuang, Gansu Prefecture, China)
Gallery/Asia 2008. 12. 3. 08:57 |둔황 #8 - 유림굴
(Yulin Caves at Dunhuang, Gansu Prefecture, China)
‘돈황은 우리나라 학술 상심의 역사다’
장경동 앞 기념관 마당의 돌에 큼직하게 새겨진 중국학자 첸인커의 글귀다.
뒤늦게 돈황을 찾은 미국 하버드대 탐사대의 경우, 가져갈만한 문서가 남아있지 않자 아예 석굴 벽에 그려진 벽화를 부분적으로 절단하거나 부조상을 떼어가기도 했다.
중국은 열강의 탐사대를 ‘도적’이라고 부르며 약탈해간 돈황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돈황 문화재를 소유한 국가들은 그 보물들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청나라 말의 혼란기에 온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가 원래의 소유주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 중 엄청난 문화재가 허공으로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장경동은 왜 폐쇄되었고 그 원인은 무엇일까?
온갖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지만, 그 중에서도 송나라 시대 서하의 난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쟁이 벌어지자 승려들이 중요 문서를 거두어 작은 굴에 보관한 후 흙으로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돈황 문서는 너무나 양이 방대하여 이를 연구하는 돈황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원전을 번역하는 작업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월아천이 명사산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면 돈황 문서는 돈황학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할 수 있다.
장경동의 문서가 모두 외부로 편취되어 나가고 불상과 벽화도 많이 손상되었지만 그래도 막고굴의 대부분 석굴은 아직까지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벽화의 손상이 날로 심해져서 얼마전부터는 10개의 석굴만 일반 관굉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