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을 이겨내는 라다크 사람들의 겨울축제

   헐벗은 언덕 꼭대기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라마교의 승원. 그 위로 마치 은가루처럼 반짝이는 눈발이 흩날린다. 히말라야의 건조한 고원지대에 내리는 눈은 미처 땅에 닿기도 전 어디론가 날려가버린다. 승원에서 내려다본 인더스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고 거친 들판 위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흙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라다크의 겨울은 춥고 메마르다. 인도양에서부터 북상한 구름은 6천미터급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이어진 히말라야 산맥을 넘지 못하고 저절로 사그라든다. 따라서 산맥 남쪽의 캐시미르에는 겨울철마다 폭설이 쏟아지는데 반해 그 너머의 라다크는 연간강수량이 100mm에도 못 미치는 산악사막이다.

   평균해발 4천미터가 넘는 라다크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외지로 연결되는 도로는 10월초 내리는 첫눈과 더불어 일찌감치 두절된다. 길이 다시 뚫리는 이듬해 5월까지는 모든 물자가 비행기를 통해 공수된다. 티벳 고원으로부터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때면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대지에서 살아가는 라다크인들에게 연간 8개월이나 계속되는 겨울은 동면의 계절이다. 그 춥고도 지겨운 겨울 동안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라마교 승원인 곰파(Gompa)에서 벌어지는 가면무 제전이다.

   축제는 나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3명의 승려가 승원 지붕에 올라가 길이 3미터가 넘는 구리 나팔 수르나를 힘주어 분다. 무게가 가득 실린 저음이 차가운 공기를 뚫고 멀리 멀리 퍼져나가노라면 주민들은 기다렸다는듯 집을 나서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김없이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달고 있다. 여자들은 펠트로 만든 옷 위에 수가 놓인 비단 조끼를 입고 은목걸이를 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온통 터키석과 산호로 장식된 코브라 모양의 머리장신구이다. 페락이라는 이름의 이 장신구는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몇 세대를 걸쳐 전수되다 보면 다듬지 않은 터키석이 수백개씩 주렁주렁 달리게 된다.

   승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은 한껏 치장을 한 채 축제를 구경하려고 모여든 주민들의 행렬로 북적거린다. 모두들 자주색 모직 옷을 입고 있어 멀리서 보면 불개미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승원 중앙의 대웅전 두캉에는 제전에 쓰이게 될 쓸 제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쥬니퍼 향을 태우는 연기가 가득하다. 벽에는 높이 15미터가 넘는 대형 탱화가 내걸려있다. 보통 때는 깊숙한 곳에 보관하지만 일년에 한두 번 있는 축제날에는 승원의 벽에 내다 걸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수도처의 엄숙한 분위기가 깔려 있던 승원 안마당에도 축제의 들뜬 기분이 떠돈다. 제전에 쓰일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서로 장난치는 동자승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라다크에서는 종교에 대한 가족의 신심을 나타내기 위해 자식들 중 한 명을 곰파로 보내 라마승으로 만드는 전통이 있다. 어린 나이에 승원에 들어와 수도생활을 하는 동자승들에게 모처럼 열리는 축제는 억눌린 분위기에서 벗어나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으리라.

   승원 안마당 자리가 가득 차면 구경꾼들은 발코니와 계단은 물론, 지붕에까지 올라가서 목을 빼고 축제의 시작을 기다린다. 이윽고 노란 모자를 쓴 승려들이 나팔을 불며 입장하고 북소리와 징소리, 저음과 고음이 묘하게 뒤섞인 독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승원의 주지스님인 쿠샥과 생불로 추앙받는 고승인 링포체가 자리를 잡으면서 비로소 가면무가 행해진다. 고승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과 수도생활로 보내기 때문에 축제를 통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감격하게 된다.

   라다크에서 행해지는 이 티벳식 가면무를 참(Cham)이라고 부른다. 샤머니즘적 색채가 강하던 전통 종교인 본교에 대한 불교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으로 여러 모양의 가면을 쓴 승려들이 선과 악의 대결을 춤으로 묘사한다. 제대로 거행되는 참은 사흘동안 계속되는데 첫날의 간단한 개막의식과 더불어 이어 둘째 날에는 13장면의 가면무가 장장 7시간 동안 펼쳐진다.

   가면무는 가벼운 리듬에 맞추어 결혼, 출생, 죽음, 추수 등 속세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음엔 해골 가면을 쓴 악령이 나타나 죽음의 춤을 추며 지하 세계를 보여준다. 갖가지 동물 모양의 가면도 등장하는데 결국은 선령이 악령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렇듯 승무와 액막과 의식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공연예술인 참은 어떤 지침서를 통해 전해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라다크의 가면무는 유장하고 리드미컬하다. 2-3막의 장중한 군무 다음엔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독무가 나오는데 헛넘어지는 코미디언처럼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재밌다. 이때가 되면 구경군들은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어제낀다. 그러나 관음보살의 사자인 선령이 느릿느릿 위엄있는 검무를 추면서 악령을 물리치는 장면을 지켜보는 관중들의 자세는 진지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하다. 입 속에서는 ‘옴마니받메훔 옴마니받메훔......’하고 만트라(진언)를 외면서 쉬지 않고 기도문통을 돌린다.

   가면무 제전에 재미를 더하는 역할로 시림바와 챠보가 있다. 시림바는 긴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공연장 질서를 잡는 늙수구레한 승려를 말한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회초리를 휘두르는 척만 하는데도 여인네들은 시림바가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며 피해 달아난다. 한편 챠보는 2명의 젊고 활기찬 승려로 구성되며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채 엉덩이에 돼지 꼬리를 달고 다닌다. 챠보의 임무는 구경꾼들로부터 시주를 받아내는 일이다. 한번 이들에게 걸리면 끝없이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한푼 줍쇼’ 내미는 바가지에 시주돈을 내야 한다.

   가면무 제전은 종교의식이지만 그 속에는 익살과 해학이 깃들여져 있다. 승려와 주민이 한데 어울려 함께 웃고 함께 즐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축제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승원의 축제를 참관하다 보면 라다크에서는 종교가 생활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가면무 제전이 열리는 동안 승원의 절벽 아랫쪽 공터엔 임시 시장이 선다. 캔바스와 나일론으로 만든 텐트들이 들어차고, 배가 고파진 구경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모모(만두)나 투파(국수) 등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다. 멀리 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온 만병통치약 장수, 틀니로부터 달라이라마 사진까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파는 시크교도 등 온갖 장사꾼들과 인형극단, 유랑악단, 야바윗군을 만나는 것도 축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라다크인들은 이같은 축제를 즐기면서 혹독한 자연의 시련을 잊고 긴 겨울을 이겨낸다. 어느 승원에서 축제가 벌어진다는 소문이 퍼지면 약속이나 한 듯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만약 축제가 없다면 겨울의 라다크처럼 무미건조한 곳은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라다크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백 개의 승원에서는 거의 매주 크고 작은 겨울축제가 열린다. 그중 12월의 라다크력 신년축제 로사르와 1월의 스피툭 승원 가면무제전이 특히 볼만하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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