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3

나는 서해안에 비브리오균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그동안 비싸서 못 먹었던 회를 그제서야 사먹는 인간이다. AI 뉴스가 나오면 양평에 있는 ‘오리학교’(오리들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오리를 죽여서 요리하는 식당이다)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거나 동네 치킨집에서 닭고기를 사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구는 이유는?
첫째, 남들이 다 안 먹어주면 장사하는 분들이 망할 것 같아서.
둘째. 이런 때 돈 주고 사 먹으면 장사하는 분들이 음식을 좀 더 많이 줄 것 같아서

그럼 비브리오균에 감염되거나 조류독감에 걸리면 어쩌냐고? 물론 걸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도 운이 매우 좋아야 (확률적으로 봤을 때) 걸리는 것이다. 아무나 걸리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병에 걸린다면 중세의 페스트나 천연두가 돌았을 때 사람들 다 죽어버렸게?
나는 그런거 따질 줄 모른다. ‘어떤 몹쓸 병이 돌아서 전인구의 20퍼센트가 작살이 났다.’ 그러면 조심해야겠지만 ‘감기가 유행인데 전인구의 1퍼센트가 걸릴 확률이 있다.’ 그러면 그 1퍼센트에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기보다는 대충 넘기면서 살아오던 방식대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년전 사스인가 하는 역병이 한창 유행일 때 동남아 가는 여행객들이 줄줄이 예약 취소를 하자마자 나는 얼씨구나 하고 여행을 떠났었다.
나라마다 공항에선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엄청 많이 보였다. 여행객도 마스크, 입국심사대, 세관의 공무원도 마스크.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불신의 눈으로 려보는 것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매정한 인간성이 단번에 다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 녀석들아 너희들만 오래 살아라. 평생 마스크 쓰고... ’
그런데 주변에 감기 걸려서 기침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험한 눈으로 쏘아보며 마스크를 여미던 사람들, 평생 마스크를 벗지 않고 살 듯하던 그 사람들이 일주일, 이주일 지나니까 슬슬 마스크를 벗더란 얘기다. 그때쯤 사스가 사그라들지 않았냐고? 천만에. 사스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다만 사람들은 마스크가 계속 쓰고 다니기에는 엄청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진즉에 왜 못 깨달았는지... 

군대에 가면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탄환이 떨어질 확률이 적다고 하지 않나? 나는 지진이나 해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번 지진이나 해일이 난 곳은 당분간은 다시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쓰나미 나자마자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한민국에서 쓰나미 며칠 후 현장에 온가족 데리고 찾아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지진이나 해일이 나면 미디어는 예외 없이 ‘여진의 공포’, ‘쓰나미 다시 덥친다’는 기사를 써대기 마련이다. 지난번 미얀마 사이클론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이클론이 오자마자 ‘더 큰 사이클론 접근중’이라는 기사가 온 신문을 도배했다. 뉴올리언스 카탈리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그런거 다 믿고 어떻게 세상을 사나? 내 방식대로 줏대를 가지고 살아야지’라는 것이 이번 쇠고기 파동 때도 마찬가지로 내 머리 속에 있던 생각이었다.
더구나 광우병은 정부 발표에 의하면 걸릴 확률이 수천만분의 일이라지 않던가? (이런 말도 안되는 확률 계산은 누가 하는지 모르겠다만...)

어쨌건 나는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는 말에 너무 기뻤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내돈 내고 쇠고기를 사먹어본 기억이 없다. 아니 그전에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진 돈은 많지 않은데 제 정신 있는 사람이 삼겹살 1인분 7천원이면 먹을 수 있는데 뭐하러 쇠고기 1인분 (실은 반인분도 안되는)에 3배의 값을 주고 먹겠는가. 그런데 그걸 좀 싸게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쇠고기 때문에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자 예의 그 심술이 발동했다. ‘그래 인간들아, 촛불 들어라, 나는 쇠고기 먹고 영양보충 좀 해야겠다.’

그런데 사태는 엉뚱하게 흘러갔다. 그래서 나도 광화문에 나서게 되었다. 물론 쇠고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국 쇠고기 들어오면 열심히 먹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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