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7 - 신 막고굴
(New Mogao Caves at Dunhuang, Gansu Prefecture, China)












왕도사의 보물 발견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유럽 열강의 탐사대들이 돈황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당시 어지러웠던 청나라의 사정을 틈타 돈황의 보물들을 자국으로 빼내가게 된다.
영국의 스타인은 왕도사를 꾀어 문서 20상자와 그림 5상자를 은화 40닢과 바꾸어 런던으로 보냈다.
뒤를 이어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돈황을 찾았다.

스타인이 회화에 몰두했던 것에 비해 프랑스 극동학원 교수였던 펠리오는 한문을 읽을 수 있었으므로 귀중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펠리오는 스타인이 그림을 가져가면서 생긴 비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은 채 촛불에 의지해 중요한 문서들을 선별해낸 후 약간의 돈으로 문서들을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펠리오가 당시 구입하여 파리로 가져간 문서 가운데 그 유명한 신라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혜초가 천축의 다섯나라를 다녀온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은 원본이 아니고 한 권의 두루마리에 쓰여진 필사본이다.
그나마 책의 앞부분이 떨어져나가고 후반부만 남아 있다.
프랑스에 남아있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제국주의 탐험대에 의해 빼앗긴 돈황의 보물들은 아직까지 전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도 우연한 기회에 이중 일부를 소장하게 되었다.
일본의 승려인 오타니가 탐험대를 조직하여 돈황으로부터 일본에 가져갔던 미술품이 일제침략기 당시 조선총독부로 넘어와서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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