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의 주도 산타크루즈 섬에서 자란 64마리의 육지 이구아나가 에쿠아도르 공군 비행기의 도움을 받아 고향 발트라 섬으로 돌아갔다. 산타크루즈 섬의 푸에르토 아요라에 있는 찰스 다윈 재단 (CDF) 산하 이구아나 사육 센터에서는 인공 번식으로 태어나 5년이 지난 육지 이구아나 가운데 몸무게가 400그램이 넘는 건강한 개체를 선발해 발트라 섬으로 이주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성체만을 골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이유는 적당한 크기가 되어야만 발트라 섬에 살고 있는 고양이나 들쥐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발트라 섬의 육지 이구아나는 어떤 사연으로 수십 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되었을까.

   발트라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 중에 에쿠아도르 본토와 연결되는 공항이 있는 곳이다. 폭이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주도인 산타크루즈 섬과 마주보고 있는 이 작은 섬은 원래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의 낙원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발견될 당시 발트라를 비롯한 대부분 섬에는 육지 이구아나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1835년 산타크루즈 섬을 방문한 찰스 다윈은 ‘사방에 널려있는 이구아나 때문에 작은 텐트 하나 칠 자리도 찾기 어렵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나 고래잡이 어부들이 상륙하여 섬에 정착하면서 육지 이구아나는 심각한 곤경에 처한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바다 이구아나와 달리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 육지 이구아나는 식량으로 인기를 끈 것이다. 이주민들이 육지 이구아나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으면서 많은 이구아나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이주민을 따라 들어온 외지의 가축들은 결정적으로 육지 이구아나를 섬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고양이는 새끼 이구아나를 잡아먹고 개는 다 자란 이구아나를 공격했으며 염소는 이구아나의 식량원인 풀밭을 사정없이 황폐화시켰다. 게다가 돼지는 이구아나가 땅 속 둥지에 낳아놓은 알을 예민한 후각으로 찾아내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결국 산타크루즈의 육지 이구아나는 정착민이 들어온지 겨우 몇십년 만에 완전히 멸종했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른 섬에 사는 육지 이구아나도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산타크루즈 섬 북쪽의 발트라 섬만은 무인도로 남아있어 많은 육지 이구아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천 마리의 육지 이구아나가 살던 이곳은 엉뚱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입는다. 전쟁이 시작되고 일본군이 파나마 운하를 공격할 것을 걱정하던 미국은 운하를 지키기 위해 발트라 섬에 중형 전폭기 이착륙이 가능한 비행장과 해군과 공군 기지를 세웠다. 이 기지는 전쟁 중에는 변변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군 기지에 근무하던 군인들이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보내던 중 찾아낸 취미거리가 하필이면 이구아나 사냥이었다. 군인들의 사격 연습 상대가 된 육지 이구아나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었다.

   다행히 1930년대 초반, 다윈의 저서를 읽고 갈라파고스를 방문했다가 산타크루즈 섬에서 육지 이구아나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에 충격을 받고 발트라 섬의 육지 이구아나 70마리를 바로 위 작은 무인도인 노스 세이무어 섬에 옮겨 놓은 눈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황색 저널리즘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다. 앞으로 닥칠 발트라 섬의 개발을 걱정하며 동행한 과학자들에게 의뢰해서 이구아나를 옮겨놓게 한 허스트의 선견지명으로 육지 이구아나는 겨우 멸종을 면하게 된 것이다.

   이제 육지 이구아나의 수가 차츰 불어나고 있는 발트라 섬에서는 커다란 선인장 나무 밑에서 선인장 줄기가 저절로 떨어지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구아나가 자주 눈에 띈다. 선인장이 떨어지면 앞발로 선인장 줄기에 붙은 거친 가시를 대충 긁어내고 삼키기 시작하는데, 그 커다란 선인장 줄기가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는 긴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 등에 솟은 갈기 덕분에 ‘현대의 작은 공룡’으로 불린다. 몸집을 그대로 확대하면 오래 전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과 똑같이 생겼다는 뜻이다. 사납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온순한 성격을 가진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 사람 때문에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가 사람에 의해 종을 보존하게 된 이들의 기구한 운명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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