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on rainforest, Manaus, Brazil  (브라질 마나우스 아마존 열대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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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6

Gallery/South America 2011. 1. 2. 21:51 |

Mask at Salvador de Vahia



<Mask #06>_Salvador de Bahia, Brazil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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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5

Gallery/South America 2011. 1. 1. 22:57 |
Mask at Salvador de Bahia, Brazil




Salvador de Bahia, Brazil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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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4

Gallery/South America 2011. 1. 1. 22:52 |
Mask at Salvador de Bahia, Brazil




Salvador de Bahia, Brazil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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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3

Gallery/South America 2011. 1. 1. 22:30 |

Mask at Salvador de Bahia, Brazil



 

<Masks #03>_Salvador de Bahia, Brazil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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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2

Gallery/South America 2011. 1. 1. 22:27 |

Mask at Salvador de Bahia, Brazil



 

<Masks #02>_Salvador de Bahia, Brazil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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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s #01

Gallery/South America 2011. 1. 1. 21:41 |

Mask at Salvador de Bahia, Brazil



 

<Masks #01>_Salvador de Bahia, Brazil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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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살바도르 #1 - 라바젬 도 본핌 의식 
(Lavagem do Bonfim Festival of Salvador, Braz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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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바이아 주의 주도인 살바도르 다 바이아 (Salvador da Bahia)는 브라질 전역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살바도르는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포르투갈 함대가 1500년 4월에 신대륙에서 최초로 닻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다음해인 1501년 11월에는 이탈리아의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이곳에 상륙하기도 했다.

1549년, 포르투갈은 신대륙 개척을 위한 대규모 선단을 보내 살바도르를 건설하고 이곳을 식민지의 수도로 정한다. 살바도르는 리우데자네이루로 수도가 옮겨질 때까지 3백여년간 브라질의 수도였으며 포르투갈 제국에서 리스본 다음으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전체 인구의 55%가 백인인 브라질에서는 흑인보다 백인이 더 자주 눈에 띄지만 살바도르에서만은 예외이다. 살바도르 주민의 대부분은 흑인이다. 포르투갈은 1538년부터 수많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브라질로 데려왔다. 이들의 후예가 살바도를 중심으로 퍼져 오늘날의 흑인 인구를 만들었다.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토착종교가 포르투갈 당국에 의해 금지당하자 의식의 진행은 아프리카 방식으로 하면서 가톨릭 성인을 차용하여 숭배 대상으로 삼는 독특한 종교인 칸돔블레를 창안한다. 칸돔블레를 기반으로 살바도르에서 발전한 음악, 춤, 무술 등의 양식은 다양한 아프리카 문화를 내포하는 아프로-브라질 문화를 만들어냈다.

1월 15일, 살바도르의 중심가에서는 아프로-브라질 문화를 대표하는 큰 행사인 라바젬 도 본핌 (Lavagem do Bonfim) 의식이 열렸다. 살바도르 해변에 자리잡은 콘세이사옹 교회에 운집한 인파가 6킬로미터 떨어진 본핌 교회까지 행진을 하며 축제를 벌이는 행사이다. 거리에 모인 수십만의 시민들은 한결같이 하얀 옷을 입었다. 이날 축제에는 검은 옷을 입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가톨릭 신부들과 칸돔블레 여사제들이 의식을 집전하는 동안 거리의 시민들은 이미 축제 무드로 달아올라 춤판을 벌이며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한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진면목이 한껏 발휘되는 시간이다. 행렬을 이끄는 선두는 바이아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5백여명의 여성 그룹인 바이아나들이다. 머리에 꽃다발을 이고 빙글빙글 춤을 추며 시가를 행진하는 바이아나의 뒤로는 대형 악대가 따르며 아프리카 리듬을 연주한다.

살바도르 중심가의 거리는 남녀노소 할것없이 맥주병을 든 사람들로 축제의 열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시민들은 악대의 연주에 맞춰 몸을 흔들며 길을 메우고 행진을 한다. 이날 행사에는 특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공격을 중지하라’, ‘팔레스타인 주민 학살 반대’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단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본핌 교회에 도착한 행렬은 교회의 계단을 물로 닦는 행사를 벌인다. 축제의 이름인 라바젬이란 ‘깨끗하게 닦는다’라는 의미이다. 의식은 사제들의 몫이고 시민들은 점점 더 큰 춤판을 벌인다. 본격적인 축제는 의식이 끝난 후부터 시작이다. 다음날 새벽까지 살바도르에는 천둥이 울리는듯한 북소리와 시민들의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살바도르 시민들에게 축제는 삶의 과정이 아니라 삶의 목적인 듯 하다. 아프리카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살바도르는 삼바 카니발로 대표되는 브라질의 축제문화가 싹트고 뿌리내린 본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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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illon, New Year's Festa at Copacabana Beach, Rio de Jan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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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게 새해 첫날을 맞는 사람들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민들일 것이다. 리우 시내의 남쪽에는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라는 두 개의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데, 그 중 코파카바나 해변에 매년 마지막 날 2백여만명의 리우 시민과 관광객들이 모여 거창하고 떠들썩한 송년 행사인 헤베이옹(Reveillon) 축제를 벌인다.

12월 31일, 리우 시내는 죽음의 도시처럼 텅텅 빈다. 모든 시민들이 새해맞이 축제를 위해 해변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8킬로 떨어진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향하는 해안도로에는 한낮부터 차들이 줄을 잇고 경찰들은 차량을 통제하느라 바쁘다. 성미가 급한 브라질 사람들은 아예 길가에 차를 버리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해질 무렵, 길이가 4킬로에 달하는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다. 1년에 단 하루뿐인 이 날을 기념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해변의 호텔들은 이미 1년전부터 예약이 끝난 상태다. 가끔씩 예약 취소로 방이 비기라도 하면 평소 1백불 정도 하는 투숙요금이 이날만은 다섯배 이상으로 뛰어오른다.

밤 9시가 되자 드넓은 해변과 해안도로는 몰려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해변에 마련된 무대에서 삼바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시민들은 맥주와 샴페인 잔을 들고 미친듯이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브라질 사람들이 누구인가. 온 세상에서 잘 놀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아니던가. 어린 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현란한 삼바 율동을 선보이며 축제 무드를 달구어간다.

축제의 한편에선 흰 옷 차림의 시민들이 줄을 지어 바다로 들어가면서 경건한 송년행사인 예만자(Iemanja) 의식이 시작된다. 새해를 맞는 순간 흰 색의 옷을 입는 것은 리우 시민들의 오랜 전통이다. 불꽃 놀이로 새해를 맞는 도시는 런던, 시드니, 뉴욕, 홍콩 등 많지만 리우가 이들 도시와 다른 점은 흰 옷 차림의 시민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예만자 의식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라디올라스나 장미를 들고 바다에 나가 바다의 여신 예만자에게 새해의 소망을 빌면서 꽃을 파도에 흘려보낸다.

11시 30분부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비를 피하는 사람이 없다.
드디어 11시 59분. 사람들이 소리높여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서 사방을 가르는 화려한 폭죽과 함께 코파카바나 해변의 불꽃놀이로 새해맞이가 시작됐다.

해안에 떠있는 선박에서 쏘아올리는 폭죽이 코파카바나의 밤하늘을 화려가게 수놓는다. 불꽃놀이 자체만 보면 우리나라나 홍콩의 그것과 비교해서 더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꼬리를 길게 늘이며 떨어지는 불꽃이 아니고 그냥 하늘에서 폭발하고 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긴 해안선을 따라 동시에 터지는 불꽃은 일대장관이다. 이날 사용되는 폭죽의 양은 5톤이 넘는다. 코파카바나 해안은 이내 자욱한 화약연기에 묻히고 번쩍번쩍 번개처럼 밤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들이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가족들은 준비했던 샴페인을 터뜨리며 새해를 축하한다. 젊은 연인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짙은 키스를 나눈다.

불꽃이 사그라들면서 축제도 끝나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코파카바나에선 이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된다. 삼바 공연이 열기를 뿜으면서 흰옷 차림의 시민 2백만명이 몸을 흔들어대는 광란의 도가니가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드디어 1월 1일의 태양이 떠오르면 코파카바나 해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첫 아침을 맞는다. 리우의 한 해가 또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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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거리
(Copacabana Beach Street Scene, Rio de Janeiro, Brazil)







이런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이상한건지,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한건지... 헷갈린다.
12월 31일 오후에 촬영한 코파카바나 거리 풍경이다.
몇시간 지나면 이곳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2009년 새해를 맞는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벌써 경찰들이 길을 막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TV방송에서 올해는 경제위기 때문에 참가자가 예년보다 적을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해변에 모이는 사람들이 (불과) 2백만명 정도밖에 안될거라고... OTL
오늘밤 어떻게 하면 깔려죽지 않고 살아남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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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남단 도시, 아르헨티나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우슈아이아 항구
(Ushuaia Port, Isla Tierra del Fuego,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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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티에라 델 푸에고 섬 (Isla Tierra del Fuego,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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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 Chile  (칠레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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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에는 다른 곳에선 느끼지 못했던 장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남미 대륙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드레이크 해협 너머 남극대륙에서 불어온 바람이 오싹한 추위를 몰고 지나간다.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의해 양분된 남아메리카 대륙 남부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산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다가 드넓은 대평원으로 펼쳐지는데 이곳이 바로 파타고니아다.

   세계지도를 펴보자.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남위 45도 아래에 줄을 그어놓고 보면 지구상 다른 지역에서는 육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뉴질랜드 남섬의 일부만 남위 45도 이남에 살짝 걸쳐 있을 뿐 오스트레일리아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모두 훨씬 북쪽에 위치한다. 그만큼 파타고니아는 남극에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하는 독특한 날씨가 이곳의 특징이다. 강렬한 직사광선이 내리쪼이다 어느 순간 돌풍이 불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해가 떠있는 가운데 진눈개비가 날리기도 한다. 파타고니아에선 여행의 피크시즌인 12월, 1월의 한여름철이라 할지라도 반팔 티셔츠와 함께 겨울용 옷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안데스 동편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는 광대한 사막지형이다. 아시아에서 고비라 부르는, 모래언덕은 없지만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건조한 평원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가 스텝 지형이 된 이유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비구름이 안데스 산맥에 걸려 산을 넘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쪽의 칠레 파타고니아는 태평양의 서풍이 뿌리는 비와 눈으로 인해 강수량이 많다.

   칠레에서는 파타고니아 지방을 ‘제12지역’ (Region 12)이라는 단순한 행정명칭으로 부른다. 이름만으로는 무변한 황무지 같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면 속속들이 진주와도 같은 여행지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안데스 산맥이 파타고니아 평원으로 스러지기 전에 마지막 용트림을 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산군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파이네의 탑’이라는 이름대로 옥색의 빙하호를 끼고 3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진 토레스 델 파이네 산은 마치 거대한 탑처럼 보인다. 토레스 델 파이네가 칠레 파타고니아의 자랑이라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숨은 보석은 피츠로이 산군이다. 피츠로이는 다윈이 탔던 비글호의 선장 이름이다. 피츠로이 산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는 세로 토레(Cerro Torre), 거대한 암봉이 송곳처럼 솟아오른 아름답기 그지없는 산이다.

   파타고니아의 중심 도시 푼타아레나스는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당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유럽의 물동량 증가로 많은 배들이 북적대던 주요한 항구였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마젤란 해협까지 내려오는 배의 수가 격감하면서 이제는 옛날의 영화를 뒤로한 채 고즈넉한 분위기에 잠겨 있다. 이 도시는 남극대륙으로 가는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남반구의 여름인 12월이 되면 남극으로 가려는 탐험가와 과학자들이 몰려들고 남극해로 향하는 대형 크루즈선들이 들어와 잠시 활기를 띠기도 한다.

   ‘불의 땅’이란 뜻의 티에라 델 푸에고 (Tierra del Fuego)는 파타고니아 최남단에 위치한 커다란 섬이다. 파타고니아가 그렇듯 이 섬 역시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반씩 영토를 나누어 갖고 있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좁다란 해협에 의해 파타고니아 본토와 분리되는데, 수로처럼 보이는 이 바다가 그 유명한 마젤란 해협이다. 남아메리카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던 마젤란은 이 수로를 발견함으로써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물길을 대폭 단축하게 되었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광활한 땅이다. 혹독한 기후로 농작물을 기르지 못해 양들을 기르는 목장, 에스탄시아만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최근 티에라 델 푸에고의 남단에 있는 항구도시 우슈아이아는 관광지로 변모,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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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의 주도 산타크루즈 섬에서 자란 64마리의 육지 이구아나가 에쿠아도르 공군 비행기의 도움을 받아 고향 발트라 섬으로 돌아갔다. 산타크루즈 섬의 푸에르토 아요라에 있는 찰스 다윈 재단 (CDF) 산하 이구아나 사육 센터에서는 인공 번식으로 태어나 5년이 지난 육지 이구아나 가운데 몸무게가 400그램이 넘는 건강한 개체를 선발해 발트라 섬으로 이주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성체만을 골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이유는 적당한 크기가 되어야만 발트라 섬에 살고 있는 고양이나 들쥐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발트라 섬의 육지 이구아나는 어떤 사연으로 수십 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되었을까.

   발트라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 중에 에쿠아도르 본토와 연결되는 공항이 있는 곳이다. 폭이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주도인 산타크루즈 섬과 마주보고 있는 이 작은 섬은 원래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의 낙원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발견될 당시 발트라를 비롯한 대부분 섬에는 육지 이구아나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1835년 산타크루즈 섬을 방문한 찰스 다윈은 ‘사방에 널려있는 이구아나 때문에 작은 텐트 하나 칠 자리도 찾기 어렵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나 고래잡이 어부들이 상륙하여 섬에 정착하면서 육지 이구아나는 심각한 곤경에 처한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바다 이구아나와 달리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 육지 이구아나는 식량으로 인기를 끈 것이다. 이주민들이 육지 이구아나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으면서 많은 이구아나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이주민을 따라 들어온 외지의 가축들은 결정적으로 육지 이구아나를 섬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고양이는 새끼 이구아나를 잡아먹고 개는 다 자란 이구아나를 공격했으며 염소는 이구아나의 식량원인 풀밭을 사정없이 황폐화시켰다. 게다가 돼지는 이구아나가 땅 속 둥지에 낳아놓은 알을 예민한 후각으로 찾아내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결국 산타크루즈의 육지 이구아나는 정착민이 들어온지 겨우 몇십년 만에 완전히 멸종했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른 섬에 사는 육지 이구아나도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산타크루즈 섬 북쪽의 발트라 섬만은 무인도로 남아있어 많은 육지 이구아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천 마리의 육지 이구아나가 살던 이곳은 엉뚱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입는다. 전쟁이 시작되고 일본군이 파나마 운하를 공격할 것을 걱정하던 미국은 운하를 지키기 위해 발트라 섬에 중형 전폭기 이착륙이 가능한 비행장과 해군과 공군 기지를 세웠다. 이 기지는 전쟁 중에는 변변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군 기지에 근무하던 군인들이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보내던 중 찾아낸 취미거리가 하필이면 이구아나 사냥이었다. 군인들의 사격 연습 상대가 된 육지 이구아나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었다.

   다행히 1930년대 초반, 다윈의 저서를 읽고 갈라파고스를 방문했다가 산타크루즈 섬에서 육지 이구아나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에 충격을 받고 발트라 섬의 육지 이구아나 70마리를 바로 위 작은 무인도인 노스 세이무어 섬에 옮겨 놓은 눈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황색 저널리즘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다. 앞으로 닥칠 발트라 섬의 개발을 걱정하며 동행한 과학자들에게 의뢰해서 이구아나를 옮겨놓게 한 허스트의 선견지명으로 육지 이구아나는 겨우 멸종을 면하게 된 것이다.

   이제 육지 이구아나의 수가 차츰 불어나고 있는 발트라 섬에서는 커다란 선인장 나무 밑에서 선인장 줄기가 저절로 떨어지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구아나가 자주 눈에 띈다. 선인장이 떨어지면 앞발로 선인장 줄기에 붙은 거친 가시를 대충 긁어내고 삼키기 시작하는데, 그 커다란 선인장 줄기가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는 긴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 등에 솟은 갈기 덕분에 ‘현대의 작은 공룡’으로 불린다. 몸집을 그대로 확대하면 오래 전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과 똑같이 생겼다는 뜻이다. 사납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온순한 성격을 가진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 사람 때문에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가 사람에 의해 종을 보존하게 된 이들의 기구한 운명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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