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6일~2월1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마추어 국제사진워크숍 참가기


 ▲ 차이나타운 주변 초등학교에서 만난 타이 아이들. (김윤섭)
 

연애를 시작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몰입을 한다. 몰입하는 동안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맛본다. 연애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 일에 자신의 ‘안’과 ‘밖’을 모두 던져 몰입하는 과정을 겪고 나면 한층 성숙한 자아를 만난다.
 
지난 1월 눈 내리는 서울을 떠나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사진에 대한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30도를 웃도는 방콕의 거리를 찾은 사람들이 있다. 결혼한 지 3개월 된 신혼부부부터 주부, 회사원까지 직업과 연령이 다양한 이들이 사진이라는 공통된 주제 앞에 모였다.


 

 ▲ 프라수멘(Phrasumen)공원에서 태국인이 공놀이 하고 있다. (이윤환)
 

“어, 저번 워크숍에서 만났던 친구네!”
 
1월26일부터 2월1일까지 타이(태국) 방콕과 파타야에서 사진가 이상엽이 기획하고 사진잡지 <포토넷>이 주최한 ‘2009 태국 국제사진워크숍’이 열렸다. 이 워크숍에는 20년간 히말라야 등 오지를 촬영했고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을 제작한 사진가 박종우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제이슨 하우(Jason P. Howe), 방콕 빈민가를 찍고 있는 사진가 김윤기 등이 강사로 참여했다.
 
사진 워크숍은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로 꾸준히 이어져온 교육 행사다.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로버트 프랭크, 워커 에번스 등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워크숍을 열었고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전업사진가의 길을 선택하는 이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앤 아버스도 패션 사진가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사진가 리제트 모델이 연 사진 워크숍에서였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여는 ‘미주리 사진 워크숍’(MPW: The Missouri Photo Workshop)이 유명하고, 개인 사진가로서는 매그넘 작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워크숍이 인기가 높다.

 ▲ 타이 아유타야에 있는 불교석상과 유적들 (박상흠)

 
사진 워크숍은 일반적으로 참가자들이 특정 주제를 촬영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강사진들의 비평을 듣는 형식을 띠고 있다. 대가의 시선으로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아 실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는 재미도 크고, 사진이 주는 묘한 연대감과 우정도 깊은 감동을 준다.
 
별명이 ‘매그넘 최’일 정도로 이미 사진 실력이 탁월한 최형락(30·회사원)씨는 이미지프레스에서 주최하는 윈난 사진 워크숍 등 국내외 크고 작은 워크숍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워크숍은 짧은 시간 동안 안목을 넓혀주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 시선을 돌아보게 해서 실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최씨처럼 학습 심화과정(?)을 목적으로 참가한 박상흠(44·여행사 대표)씨는 이번 워크숍에서 다른 참가자의 사진에 반해서 팬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매그넘 최와 조경국씨 사진을 보고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찍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나누다 그새 절친이 되어 버렸단다. 다른 단체에서 사진 강좌를 들었던 박현배씨와 최영환씨를 이곳에서 만나 무척 놀라기도 했다며 크게 웃는다.
 
워크숍 기간에 이들을 바라보는 방콕 사람들은 재미있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진풍경 때문이다. 현지시각 1월27일 오후 소금기 가득한 땀방울들이 손 마디마디를 점령한 타이의 카오산 거리. 워크숍 참가자들은 머리를 히피풍으로 땋은, 허벅지 굵은 서양 여성 여행자에게 훅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면서 몇 장 찍고 웃음으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는 마치 자신을 유명 모델처럼 촬영하는 동양인이 멋지기만 하다.

 

 ▲ 카오산 거리에 있는 문신 가게. (조경국)


이렇게 낮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들은 저녁 7시께 5장씩 진행자의 컴퓨터에 모아지고, 저녁 8시부터 참가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강사의 비평을 듣는다.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참여자들의 세포가 바짝 긴장을 한다. 익명으로 사진이 발표되지만 금세 누구 사진인지 알 수 있다. “지난 강의 때 크로핑하라고 말씀드렸더니 이 사진은 너무 많이 했네요”, “여백을 살리라는 말은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진은 훌륭하지요. 과감한 구도가 사진 안에서 긴장감을 불러옵니다.” 늦은 밤까지 강사의 비평은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낮 시간의 피로도 잊은 채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어느 유명한 사진가 못지않게 세계적인 수준이다.

사진 워크숍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유정(30·회사원)씨는 “아직 초보라서 저녁때 평가시간이 너무 무섭다”고 엄살을 피운다. 그가 이번 워크숍에서 올린 가장 큰 성과는 연애하면서 몰랐던 남편의 성격이었다.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새삼 저런 면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단다. 대학에서 벽보를 붙이다가 눈이 맞아 웨딩마치를 올린 김씨와 남편 민광동(30·회사원)씨는 두 번째 신혼여행을 온 셈이다.

사진가 박종우씨는 김씨처럼 가혹한 사진비평에 바들바들 떠는(?) 참가자들을 위해 몇 가지 사진 잘 찍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빛을 잘 읽어야 한다, 골든 아워(해 뜬 후 1시간, 해 지기 전 1시간)를 이용해라,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어라, 프레임(사진 안에 또다른 프레임이 있는 것)을 걸고 찍어라, 원근감과 입체감을 살려라,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하라, 사람의 시선을 잡아라, 과감한 크로핑을 해라” 등이다.

 이 밖에 강사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실력을 늘리는 데 한몫을 했다. 쑥쑥 자란 사진들은 마지막 밤 슬라이드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동안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 20장을 골라 포트폴리오 한 권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한다. 그 포트폴리오에는 20장을 관통하는 주제가 분명해야 하고 각각의 사진들이 훌륭한 구도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 타이 전통무예인 무에타이 도장. (최형락)

 

▲ 카오산 거리       (박현배)


 

조마조마 떨리는 평가시간과 슬라이드쇼

슬라이드쇼의 스타는 방콕 시내 문신가게를 찍은 조경국(36·회사원)씨였다. 방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문신이라고 생각했단다. 최고의 사진을 만들겠다는 조씨와 달리 추억을 찾아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도 있다. 대구에 사는 변재욱(42·사업가)씨는 대학 시절 학보사 사진기자를 했다. “87년 민주화 현장에서 사진기자들과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직격탄도 맞고 최루탄도 많이 마셨지만 행복했다”고 말한다.
 
사연은 모두 다르지만 6박7일간 낯선 곳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잡은 보람은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방콕 사진 포트폴리오’로 남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경험을 한 이들만이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개와 여행자의 천국, 방콕에서 사진에 몰입한 23명은 이전과 다른 자신을 만났다.
 
방콕=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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