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자라는 야생 곰 부르노

     ‘루마니아 브라쇼프시 중심가 고층아파트 단지에 밤마다 야생 곰 수십 마리가 나타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다. 주민들은 불상사를 우려해 해가 지면 외출을 꺼리고 있다....’ 외신으로 들어온 짤막한 기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심에 야생 곰이,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나타난다니! 지리산에 살아남은 반달곰 몇 마리가 큰 뉴스가 되는 우리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마침 모스크바 근교 러시아 중앙삼림연구소의 야생곰 프로젝트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바꿔 루마니아로 향하게 되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브라쇼프는 외곽에 큰 공단을 거느린 루마니아 제2의 도시이자,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구시가 덕분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드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여느 도시와 다른 점은 시가지 바로 맞은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955미터의 탐파(Tampa)산이 솟아 있다는 것이다. 탐파 산은 산줄기를 따라 유럽 갈색곰(Ursus Arctos)의 주 서식처인 트란실바니아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연결된다. 원래 유럽 전역에 걸쳐 살고 있던 갈색곰은 서서히 멸종되면서 남은 개체들이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에서만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 마리로까지 그 수가 줄어들었던 카르파티아의 갈색곰은 그 후 공산주의 정권의 지속적인 보호정책으로 지금은 숫자가 7000을 넘어서게 되었다.

     일단 곰이 나온다는 아파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는 시내 중심가로부터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고층 아파트 수십 동이 들어서 있는 그 곳은 마치 청계산 자락의 과천 주공아파트 단지를 연상시켰다. 빼곡하게 주차된 자동차들과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놀이를 하는 아이들, 여기저기 좌판을 벌인 과일 행상... 주변에 숲이 있기는 하지만 이같은 대단위 단지에 야생 곰이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주민들은 하나같이 거의 매일 곰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해가 진 후, 다시 찾아간 아파트 단지는 어둠 속에 고요하기만 하다. 곰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차를 몰고 빙빙 도는데 사람 어깨 높이의 커다란 알루미늄제 쓰레기통 옆에 거무스름한 물체가 보였다. 두 발로 우뚝 서서 위협음을 내는 큰 키의 검은 곰 한 마리. 쓰레기통은 단지와 숲 사이에 난 자동차 길을 따라 백여미터 간격으로 놓여져 있었다. 곰들은 숲 속을 통과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통으로 이동하면서 먹을 것을 뒤지는 것이다.

     쓰레기통 뚜껑에는 용수철 장치가 있어 닫아두면 여간해선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엄청난 팔힘을 지닌 곰들은 힘들이지 않고 이 뚜껑을 열어젖혔다. 곰들은 주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쓰레기를 찾아내 능숙한 솜씨로 꺼내먹었다. 잼이 들었던 병을 찾아내 손으로 뚜껑을 열고 핥아먹는 녀석도 있다. 어떤 쓰레기통에는 일가족인 듯 서너 마리의 곰들이 모여 음식물을 나눠먹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어린 놈은 숲으로 도망치고 큰 녀석은 팔을 휘저으며 공격 자세를 보인다. 벌써 몇 년째 곰들이 아파트를 찾는데도 아직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곰과 주민 사이에는 서로의 존재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생긴 듯이 보였다. 보통 야생곰은 집단행동을 하지 않고 따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밤사이 아파트를 찾은 곰들은 어림잡아도 50마리는 넘어 보였다.

     자정이 넘고 인적이 끊기자 단지 안은 완전히 '곰 판'이 되었다. 곰들은 이제 건물 출입문까지 기웃거린다. 요란한 소리가 나서 쫓아가보니 곰 두마리가 바퀴가 달린 쓰레기통을 길 한가운데로 밀고 나와 쓰러뜨리고는 내용물을 뒤지다가 숲으로 내뺀다. 신기하기는 해도 커다란 몸집의 야생곰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비닐 봉지를 물어뜯는 광경은 그다지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왜 쾌적한 숲을 버리고 나와 주택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일까? 그것은 쓰레기통이 숲에서보다 훨씬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잡식동물인 곰은 굳이 힘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저녁이면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를 줄일 수 있으므로 점점 게을러졌던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갈색곰은 유인원, 돌고래와 더불어 동물 가운데 가장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곰 부르노를 만난 건 브라쇼프의 곰들과 숨바꼭질을 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다른 새끼 곰들은 항상 어미와 함께 다녔는데 부르노는 혼자였다. 4개월난 이 꼬마 곰은 언제부터인가 부모를 잃은 후 동네 주민들에게 부르노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와 과자나 음식을 얻어먹으며 커나가고 있다. 어느샌가 아파트의 마스코트가 된 천진난만한 부르노. 그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귀엽지만 이 아기 곰은 한편으로 브라쇼프의 골칫거리기도 하다. 사람에게 익숙한 부르노를 그대로 두면 야생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우니 사로잡아서 동물원에 보내자는 의견과 멀쩡한 야생 곰을 왜 동물원에 가두려 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부르노의 운명은 브라쇼프 숲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야생 곰들의 미래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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