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벼룩시장 클리냥쿠르  #1
(Clignancourt, The Biggest Flea Market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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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눈앞에 두었건만 파리의 공기는 아직도 제법 쌀쌀하다. 그런데 지난 주말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곳이 있었다. 파리 북부 지하철 4호선 종점인 클리냥쿠르(Clignancourt) 역 앞에 펼쳐진 벼룩시장이다. 파리에는 클리냥쿠르와 함께 몽트뢰이, 방브 등 3대 벼룩시장과 그 밖의 크고 작은 수십 군데의 벼룩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랜 것이 바로 클리냥쿠르이다.

원래 이곳은 파리 시내에서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싸구려 물건을 교환하던 시장이 생겨났었다. 1백여년 전 파리시가 생투엥과의 경계에 서있던 벽을 허물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다가 고물 더미 속에서 피카소와 세잔느의 초기 작품이 발견된 이래 확고한 중고품 시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멋진 고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생활용품 등을 팔고 있다. 빈티지 의류나 독특한 디자인의 장신구는 눈 밝은 이들만이 찾을 수 있는 보물이다. 원래 벼룩시장의 묘미는 헐값으로 뜻밖의 물건을 낚는 재미에 있는 법. 발품을 부지런히 팔거나 운이 따라준다면 1유로 동전 몇 개로 멋들어진 장신구를 건질 수도 있고, 오래전부터 찾던 귀한 책을 한 권 살 수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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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라크 국경에 가까운 반(Van) 호수 근처에 사는 순백색의 고양이 종류를 '반 케디(고양이)'라고 불렀다. 수영을 잘 하고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 케디는 양쪽 눈의 색깔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서로 색깔이 다른 눈동자를 짝눈 (오드 아이; Odd Eye)이라고 한다. 반의 주민들은 이 짝눈 고양이를 피식(Pisic)이라고 부르며 유난히 사랑한다. 짝눈 고양이의 눈동자 색은 여러 가지인데, 한쪽 눈이 호박색, 다른 한쪽 눈은 맑고 깊은 푸른색을 띄는 경우가 가장 많다. 터키 정부에서는 이 반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인근 대학교와 합동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유럽과 미국의 고양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터키시 밴 (Turkish Van)이라는 고양이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고양이는 현재 터키 당국에서 보호하고 있는 반고양이와는 종류가 좀 다르다. 터키시 밴은 몸집이 크고 털이 길며, 머리와 꼬리 끝에 갈색 계통의 무늬가 있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소위 반 패턴이라고 해서 터키시 밴에 나타나는 이 무늬를 가지고 순종 여부를 가늠한다.

  현재 구미의 애묘가들에게 퍼져 있는 터키시 밴은 1950년대에 '발견'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55년 로라 러싱턴이라는 영국 여성이 터키 동부의 반 호수 근처에서 사진 촬영 여행을 하던 중 머리와 꼬리에 붉은빛 무늬가 들어 있는 희귀한 백색 고양이 한 쌍을 발견한 뒤, 영국으로 데려가 분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고양이를 터키시 캣으로 불렀는데, 또 다른 종류의 터키 원산 고양이인 터키시 앙고라와 구별하기 위해 고양이를 발견한 장소인 반 호수의 이름을 따서 터키시 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터키시 밴이 그후 미국의 동물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터키 정부에서 흰 털에 짝눈을 가진 반고양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동물 상인들은 터키시 밴이야말로 터키 정부가 보호하는 매우 희귀한 고양이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나섰다. 터키에서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과 함께. 당연히 엄청난 가격이 매겨졌다.

  그러나 서양의 애묘가들이 벌이는 이 같은 호들갑에 대해 정작 이 고양이의 고향인 터키 동부 도시 반 주민들의 반응은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냐는 식이다. 아름다운 반 호수를 끼고 자리잡은 터키 유준수일 대학의 반고양이 연구소는 순백색의 털에 짝눈을 가진 반고양이만을 보호하고, 번식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는 6개로 나뉘어진 방에 수백 마리의 반고양이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데, 각 고양이마다 연구소에 들어온 순서대로 목에 번호표를 차고 있다. 새로 들어온 신참일수록 높은 번호를 갖게 된다. 겉모습만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흰 고양이들이지만 개성은 천차만별이다. 동료 고양이들을 못살게 굴며 조폭 역할을 하는 9번, 자기 자리에 다른 고양이가 앉으면 신경질을 부리는 공주병의 2번, 틈만 나면 밖으로 탈출할 기회를 엿보는 92번 등등.

  연구소의 이말 박사는 모든 반고양이들이 다 자기 자식 같다고 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최즌 터키시 밴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사들의 의견은 다분히 냉소적이다. "우리 고향에는 그런 고양이가 살았던 적이 없어요. 듣도 보도 못한 고양이가 반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니 기막힌 일이군요" 미국의 애묘가협회 등 동물 상인들이 중심이 된 구미의 각종 고양이 단체는 애써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만 일부 솔직한 애묘가들은 최근 터키시 밴이 진짜 반고양이가 아닌 이상 출신에 얽힌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논쟁은 최근 우리나라 고양이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번지게 되었다. 물론 터키시 밴이 고양이 종자로서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 고양이로서의 기준으로 본다면 진짜 반고양이보다는 몸집이 크고 털이 긴 터키시 밴이 훨씬 기품이 있고 우아하며 탐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육종해 낸 터키시 밴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짜 반고양이'라고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먼 훗날 서양에서 털이 길고 머리와 꼬리에 붉은 무늬가 있는 개를 육종한 뒤, '코리안 진도 독(Dog)'으로 선전하고 그 유명세에 밀려 우리나라 진도견 연구소에서 그 개를 들여다가 연구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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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치 빙하의 마녀 스키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빗자루에 올라탄 채 하늘을 날아다니며 퀴디치라는 경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낡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는 기발한 상상은 중세 유럽의 마녀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세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마녀는 모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특징이 있다. 16세기의 마녀 재판 기록은 빗자루에 대한 언급으로 꽉 차 있다고 한다. 16세기말 프랑스의 마녀 사냥꾼은 "마녀들이 빗자루를 넓적다리 사이에 끼우고 주문을 몇 마디 외우면 하늘로 몸이 떠올라 마녀모임에 갈 수 있다"고 기술할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는 빗자루를 가지고 아무리 연구를 해도 추진력을 발생시킬 방법이 없다. 그런데 매년 1월 중순, 스위스 알프스의 한 마을에서는 빗자루에 올라탄 사람들 1천여명이 하늘 위로 붕붕 날아다니는 행사가 벌어진다. 그 사람들이 이용하는 추진력이 바로 스키이다. 스키를 타고 활강하면서 작은 둔덕을 지나면 몸이 붕 뜨게 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스키 스틱 대신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고 하늘을 나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이들이 벌이는 행사는 ‘마녀 활강’이라는 뜻의 헥센압파르트(Hexenabfahrt)라는 축제이다.

스위스 발레 칸톤(다른 나라의 주에 해당하는 스위스 지방자치 행정 구역)의 작은 산간 마을 블라텐. 알레치 빙하의 하단부인 벨알프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다. 발레 주의 중심 도시인 시용으로부터 블라텐까지는 한시간 남짓한 거리이다. 시용에서 이탈리아 국경을 향해 쭉 뻗은 고속도로는 이내 교통이 뜸한 국도로 바뀌더니 곧이어 구불구불한 산길이 나오고 경사가 급해지면서 알프스 산맥 깊숙한 곳으로 들어선다.

블라텐 마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의 동상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마을 구석구석 마녀 동상이 서 있다. 동네의 가게마다 진열장에는 마녀와 관련된 물건이나 장식이 내걸려 있고 목조로 만들어진 낡은 통나무 집 현관에는 헝겊으로 만든 마녀가 실에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여기저기에서 마녀를 만나니 괜히 으스스해지는 기분이다. 왜 이 마을은 온통 마녀로 넘쳐나는 것일까?

옛날 블라텐 마을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가 살고 있었다. 여자는 마녀에게 남편을 알레치 빙하에 떨어뜨려 죽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죽었지만 꿈꾸던 새 생활을 즐기기도 전에 그 여자도 바로 죽고 말았다. 아쉬움으로 이 마을을 떠도는 혼령이 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마녀 옷차림으로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축제 날 밤에 벌어지는 마녀 댄스는 독특한 의식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닥불 주변에 모여 굿겐 무지크라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괴한 모습의 마녀로 분장을 하고 참가한다. 본격적인 마녀 댄스가 시작되기 전 음악대는 온 마을을 돌면서 흥을 돋군다.

다음날 아침 블라텐 마을에서 해발 3226미터의 호슈톡 산 정상으로 오르는 스키 리프트 앞에는 1천여명의 마녀들이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섰다.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스키어들이 각기 다른 마녀 분장을 하고 스키 스틱 대신 커다란 빗자루를 든 채 줄을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장관이다. 마녀 스키대회는 호슈톡 산 정상을 출발하여 알레치 빙하를 따라 내려오다 중간에 해발 2090미터의 벨알프 고원 지역을 통과한 후 해발 1320미터의 블라텐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총 활강 길이 12킬로에 수직 표고차로만 1800미터를 내려오는 이러한 스키 코스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스키어들이 이 마녀 스키대회에 모여드는 이유는 행사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알레치 빙하라는 대자연에서 마음껏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블라텐 마을에서 리프트를 타고 순식간에 고도를 1천 미터 올려 산 하나를 넘으니 온 세상이 환상의 슬로프로 변한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봉우리에 둘러싸인 알레치 빙하는 눈부신 흰 빛을 내뿜고 있다. 얼마 전 내린 폭설로 인해 두께 1미터가 넘게 쌓인 자연설이 푹신한 눈길을 만들고 있었다. 대회가 시작되면서 마녀 차림의 스키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온다. 그들은 슬로프를 미끄러지면서 입을 맞춰 요들송을 부른다. 요들이란 노래가 경쾌하고 빠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애처롭고 구슬픈 곡조가 알프스의 계곡에 메아리친다. 마녀들의 복장은 매우 다양하다. 무서운 얼굴 분장, 목에 걸린 뱀, 모자에 붙인 거미 등은 기본이고 검은 굴뚝을 등에 지고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굴뚝 청소부 마녀, 여러 가지 악기를 갖추고 연주를 하는 악대 마녀, 엉덩이를 드러내고 스키를 타는 섹시 마녀 등등 자기만의 개성을 살린 디자인들이 돋보인다.

마녀 차림의 스키어들은 하나같이 목에 술병을 매달고 중간에 만나는 사람마다 술을 권한다. 마셔보면 한 모금만 들이켜도 속이 탈 것 같은 독한 양주, 진한 와인들이다. 이미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린 스키어들도 눈에 띈다. 알레치 피스테의 경사는 만만치가 않다. 우리나라 스키장으로 치면 상급자, 최상급자 코스의 연속인데, 완전 음주 상태로 요들을 부르며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고는 멋진 폼으로 활강해 내려간다. 대단한 스키 실력들이다.

알레치는 알프스에서 가장 길이가 긴 빙하이다. 해발 4158미터의 융프라우를 비롯, 아이거, 묀히 등 알프스 3개 명봉에서 흘러내린 이 빙하는 발레 지방의 벨알프까지 이어지는 장장 23킬로의 거대한 얼음의 강이다. 알레치 빙하의 남단부는 보존이 잘 된 숲을 지나는데, 이 숲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삼림보호구인 알레치발트(Aletschwald)이다. 해발 2천 미터의 높은 고산지대에 펼쳐진 소나무 숲은 알레치발트의 자랑이다. 알레치 숲 입구인 리더알프에는 스위스 최초의 환경보호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운용하는 식물원은 알프스 고산식물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알레치발트의 자연보호는 유별나다. 리더알프 지역에서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차량은 통행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빙하 주변에 피어난 꽃 한송이, 썩어가는 나무 한 조각까지 자연 그대로 보존하려는 정신이 알레치 숲 자연보호구를 오늘날 유럽 환경 운동의 시발점으로 만든 것이다. 융프라우 알레치비에치호른 지역은 스위스 최초의 자연유산 후보지로 현재 유네스코에 신청되어 있는 상태다. 산을 좋아하고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알프스, 거기에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더하고 싶다면 반드시 찾아볼만한 그런 특별한 곳이 바로 1월의 알레치이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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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자라는 야생 곰 부르노

     ‘루마니아 브라쇼프시 중심가 고층아파트 단지에 밤마다 야생 곰 수십 마리가 나타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다. 주민들은 불상사를 우려해 해가 지면 외출을 꺼리고 있다....’ 외신으로 들어온 짤막한 기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심에 야생 곰이,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나타난다니! 지리산에 살아남은 반달곰 몇 마리가 큰 뉴스가 되는 우리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마침 모스크바 근교 러시아 중앙삼림연구소의 야생곰 프로젝트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바꿔 루마니아로 향하게 되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브라쇼프는 외곽에 큰 공단을 거느린 루마니아 제2의 도시이자,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구시가 덕분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드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여느 도시와 다른 점은 시가지 바로 맞은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955미터의 탐파(Tampa)산이 솟아 있다는 것이다. 탐파 산은 산줄기를 따라 유럽 갈색곰(Ursus Arctos)의 주 서식처인 트란실바니아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연결된다. 원래 유럽 전역에 걸쳐 살고 있던 갈색곰은 서서히 멸종되면서 남은 개체들이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 인근에서만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 마리로까지 그 수가 줄어들었던 카르파티아의 갈색곰은 그 후 공산주의 정권의 지속적인 보호정책으로 지금은 숫자가 7000을 넘어서게 되었다.

     일단 곰이 나온다는 아파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는 시내 중심가로부터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고층 아파트 수십 동이 들어서 있는 그 곳은 마치 청계산 자락의 과천 주공아파트 단지를 연상시켰다. 빼곡하게 주차된 자동차들과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놀이를 하는 아이들, 여기저기 좌판을 벌인 과일 행상... 주변에 숲이 있기는 하지만 이같은 대단위 단지에 야생 곰이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주민들은 하나같이 거의 매일 곰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해가 진 후, 다시 찾아간 아파트 단지는 어둠 속에 고요하기만 하다. 곰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차를 몰고 빙빙 도는데 사람 어깨 높이의 커다란 알루미늄제 쓰레기통 옆에 거무스름한 물체가 보였다. 두 발로 우뚝 서서 위협음을 내는 큰 키의 검은 곰 한 마리. 쓰레기통은 단지와 숲 사이에 난 자동차 길을 따라 백여미터 간격으로 놓여져 있었다. 곰들은 숲 속을 통과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통으로 이동하면서 먹을 것을 뒤지는 것이다.

     쓰레기통 뚜껑에는 용수철 장치가 있어 닫아두면 여간해선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엄청난 팔힘을 지닌 곰들은 힘들이지 않고 이 뚜껑을 열어젖혔다. 곰들은 주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쓰레기를 찾아내 능숙한 솜씨로 꺼내먹었다. 잼이 들었던 병을 찾아내 손으로 뚜껑을 열고 핥아먹는 녀석도 있다. 어떤 쓰레기통에는 일가족인 듯 서너 마리의 곰들이 모여 음식물을 나눠먹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어린 놈은 숲으로 도망치고 큰 녀석은 팔을 휘저으며 공격 자세를 보인다. 벌써 몇 년째 곰들이 아파트를 찾는데도 아직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곰과 주민 사이에는 서로의 존재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생긴 듯이 보였다. 보통 야생곰은 집단행동을 하지 않고 따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밤사이 아파트를 찾은 곰들은 어림잡아도 50마리는 넘어 보였다.

     자정이 넘고 인적이 끊기자 단지 안은 완전히 '곰 판'이 되었다. 곰들은 이제 건물 출입문까지 기웃거린다. 요란한 소리가 나서 쫓아가보니 곰 두마리가 바퀴가 달린 쓰레기통을 길 한가운데로 밀고 나와 쓰러뜨리고는 내용물을 뒤지다가 숲으로 내뺀다. 신기하기는 해도 커다란 몸집의 야생곰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비닐 봉지를 물어뜯는 광경은 그다지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왜 쾌적한 숲을 버리고 나와 주택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일까? 그것은 쓰레기통이 숲에서보다 훨씬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잡식동물인 곰은 굳이 힘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저녁이면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를 줄일 수 있으므로 점점 게을러졌던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갈색곰은 유인원, 돌고래와 더불어 동물 가운데 가장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곰 부르노를 만난 건 브라쇼프의 곰들과 숨바꼭질을 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다른 새끼 곰들은 항상 어미와 함께 다녔는데 부르노는 혼자였다. 4개월난 이 꼬마 곰은 언제부터인가 부모를 잃은 후 동네 주민들에게 부르노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와 과자나 음식을 얻어먹으며 커나가고 있다. 어느샌가 아파트의 마스코트가 된 천진난만한 부르노. 그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귀엽지만 이 아기 곰은 한편으로 브라쇼프의 골칫거리기도 하다. 사람에게 익숙한 부르노를 그대로 두면 야생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우니 사로잡아서 동물원에 보내자는 의견과 멀쩡한 야생 곰을 왜 동물원에 가두려 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부르노의 운명은 브라쇼프 숲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야생 곰들의 미래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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