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구멍이 뻥뻥 뚫린 바위산은 마치 거대한 벌집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그 구멍 하나하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얼마나 오래된 주거지일까? 1백년? 2백년? 사다리를 타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일은 마치 아슬아슬한 곡예와도 같았다. 원추형의 바위 첨탑이 가득 들어찬 계곡, 버섯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바위탑, 눈만 돌리면 보이는 동굴, 동굴들..... 마치 머나먼 행성의 거칠고 메마른 대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여느 지구의 풍경과는 사뭇 동떨어진 기이하고 신비한 별세계가 펼쳐진 곳. 이곳이 바로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카파도키아 지방이다.

흑해와 타우루스 산 사이에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는 ‘달세계’로 불린다. 독특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카파도키아 화산지형의 역사는 수백만년 전, 부근에 있던 3개의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키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3백만년전 일어난 해발 3914미터의 에르시예스(Erciyes)산 분화로 인해 분화구에서 쏟아져 나온 화산재가 멀리까지 날아와 카파도키아 일원에 흩뿌려지면서 이곳은 두터운 화산재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 화산재로 이루어진 토양의 성분을 ‘투파’라고 부른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과 바람이 이 투파를 깎아내려 밋밋하던 대지는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침식과 풍화에 약한 부드러운 성분의 투파는 마치 조물주가 일부러 반죽하여 빚어 놓은 듯 기이한 모양이다. 화산이 폭발하던 당시 화산재와 함께 엄청난 크기의 암석이 쏟아져 내렸는데, 나중에 투파가 흘러내리고 암석만이 덩그러니 남아 마치 버섯과도 같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투파 위에 검은 색깔의 바위가 올라앉은 것을 ‘페리카바’, 또는 ‘요정의 굴뚝’이라고 부른다. 어떤 계곡은 전체가 이같은 페리카바로 들어차 있기도 하다.

간단한 연장으로도 쉽게 파내지는 투파의 성질을 이용하여 주민들은 카파도키아 대지의 지하에 동굴을 파고 살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굴 내부는 카파도키아와 같은 건조한 지방의 주거지로는 최고였다. 처음에는 간단한 석굴을 파고 살다가 식구가 늘어남에 따라 계속 굴을 확장하여 집을 넓혀 가고 집과 집이 연결되면서 지하마을이 만들어졌다. 지하 마을이 점차 확장된 것은 카파도키아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계속된 종교 분쟁과 그에 따른 수많은 전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카파도키아가 위치한 터키 중서부의 아나톨리아 고원은 예로부터 소아시아라고 불린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이곳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마주치는 곳으로, 예부터 이민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침략자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카파도키아의 주민들은 두더지처럼 지하에 파 놓은 땅굴로 숨어들곤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하의 동굴 거주지역은 층수를 더해가면서 점점 깊게 파 내려져 거대한 지하도시를 형성했고 땅 위에 나와 농사를 짓는 시간 외엔 모든 생활이 지하에서 이루어졌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부터는 신자들이 동굴 마을에 여러 종류의 사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쉽게 파내지는 암석의 성질을 이용하여 내부를 아름답게 조각하고 벽을 프레스코로 장식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들어진 크고 작은 암굴교회는 아직도 카파도키아 일원에 수 백개가 남아 있다.

오늘날의 카파도키아는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동차로 각각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궈레메(Goreme), 유르굽(Urgup), 아바노스(Avanos) 세 마을이 카파도키아 관광의 축이 된다. 그 중에서도 카파도키아의 백미는 단연 궈레메 계곡이다. 마치 커튼을 펼쳐 놓은 듯 물결치며 이어지는 절벽에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밀가루로 빚어 놓은 것처럼 신비한 형상으로 도열해있다. 구름 위로 흰 눈을 이고 있는 거대한 에르기우스 화산이 먼 옛날 폭발하면서 이곳까지 화산재가 날아들어 오늘날의 궈레메 계곡을 만든 것이다. 궈레메 마을 가까이에는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는 암석군이 있어 신비를 더한다. 동굴과 동굴을 연결하는 계단과 사다리를 따라가다 보면 초기 기독교 시대에 돌을 파내 만든 독특한 멋을 지닌 암굴 사원을 만날 수 있다.

달세계를 연상케 하는 카파도키아의 지형도 인상 깊지만 방문객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곳은 카파도키아 일원에 흩어져 있는 지하의 마을들이다. ‘지하도시’라는 뜻의 ‘예랄투셰리’는 모두 합쳐 수백개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은 3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카이마클루, 마지코이, 데린쿠유 세 군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무려 4천여년 전인 히타이트 왕조 시대부터 이 지하도시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이 저술한 ‘아바나시스’에도 언급될 정도로 카파도키아의 지하 도시는 지중해 일대에 자자한 소문거리였다. 외부의 이민족 침략자들도 그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하도시를 공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파도키아 주민들은 평상시에는 땅 위에 허름하게 지어 놓은 움막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침략자가 나타나면 감쪽같이 지하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한번 지하로 내려가면 적어도 수개월은 지상으로 나오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니 그 어느 침략자가 이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으랴.

카이마클루 지하도시는 지상에서 보기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조그만 시골 마을일 뿐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나 있는 입구는 이 일대에 흔한 작은 동굴의 출입구처럼 평범하게 보인다. 그러나 지하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수많은 길들이 가지를 치면서 이리저리 뻗어나가 정신을 잃게 만든다. 사방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구멍들은 방과 방 사이에 창문처럼 뚫려 있는가 하면 층과 층 사이에도 뚫려 있어 어두운 길을 가다보면 자칫 잘못하면 한층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전기 조명 시설이 되어 있고 방문객을 위한 화살표가 있기에 망정이지 이마저 없다면 도저히 온 길을 되짚어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을 듯 하다. 조명이 없던 그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어떻게 이 미로를 빠져 나갔을까? 3만여명의 주민이 몇개월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만 생활했다니 화장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으며 환기는 어떻게 이루어졌고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연기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카이마클루의 지하도시는 현재 지하 4층까지만 개방되어 있다. 더 아래로는 아직 탐사되지 않았으며 얼마나 넓은 범위로 퍼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누구나 카이마클루의 지하도시가 10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지하도시인 데린쿠유와 동굴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믿음이 사실이라면 지하의 주거공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크기인 것이다.

데린쿠유는 ‘깊은 웅덩이’라는 뜻이다. 양을 치던 목동이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 지하 마을의 입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락날락할만한 작은 구멍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는 지하 1백미터 깊이에 2만여명의 주민이 생활을 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관광객들은 지표면에서 60미터를 내려간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 복잡하게 연결된 미로 중간중간에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이동식 석문이 설치되어 있고 주거 공간을 비롯하여 불을 땐 흔적이 남아 있는 부엌과 창고, 방앗간, 우물이 배치되어 있다.

카파도키아의 신비한 지형이 널리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산한 시골마을이었던 궈레메는 80년대 터키에 관광 붐이 일어나면서 지금은 유명 관광지로 변한 모습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몰려오자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의 대지는 무척 약한데, 사방에 4~5층짜리 여관 건물들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간판이 무질서하게 세워지면서 그 모습은 옛날 같지 않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민들 스스로에게 있다. 카파도키아의 수많은 원뿔 석탑과 지하 동굴, 암굴 주거지에는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근래에 무리하게 동굴 주거지를 확장하면서 침식과 풍과작용이 가속화되어 많은 주거지에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주민들은 하나둘씩 암굴을 떠나 보다 생활이 편리한 마을 근처로 집을 옮기게 되었고, 주인이 떠난 암굴은 더욱 황량한 상태로 버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생각있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며 주거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궈레메 계곡만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들고 있어났다. 궈레메에 거주하는 니크 레이센 씨는 궈레메 살리기 운동을 적극 펼치는 주인공이다. “동굴과 지하 마을은 우리가 대대로 살아온 곳입니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그냥 허물어져 가겠지요.” ‘연약한’ 카파도키아는 인간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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