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평양 알류샨 열도에서 북쪽으로 400킬로미터나 더 올라간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프리빌로프 제도는 북반구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자 지구상 최대의 바다표범 서식지다. 사시사철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신비의 제도는 알류트족이 거주하는 세인트폴, 세인트조지와 3개의 암초 등 모두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60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세인트폴과 세인트조지 두 섬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해안절벽이 바로 북태평양을 이동하는 철새들의 쉼터다. 여름철이 되면 두 섬에는 2백여 종, 3백여 만 마리의 철새들이 모여 둥지를 틀고 산란을 한다.

     세인트폴 마을 뒷편의 절벽에 올라서면 수많은 철새들이 분주히 바다와 둥지를 오가며 먹이를 물어나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숫자가 많은 철새는 바다갈매기와 바다쇠오리들이다. 다른 곳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붉은뺨 가마우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가하면 고니, 신천옹 등도 눈에 띈다. 자그마한 섬 한 모퉁이에서 이처럼 많은 종류의 새들을 만날 수 있으니 각국의 조류관찰자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새들은 사람이 해안절벽으로 내려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 듯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는데만 열중한다.

     철새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퍼핀이다. 눈가에 까만 줄이 그어진 노란 부리의 뿔 퍼핀(Horned Puffin)과 머리에 금색 깃털을 달고 있는 주황색 부리의 갈기 퍼핀(Tufted Puffin)은 인형처럼 아름답고 고운 자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리빌로프 제도는 또한 매년 여름 1백만 마리 이상의 바다표범들이 번식을 위해 몰려드는 바다표범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간기착지로 삼는 바다표범은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우리나라 동해 북부 해상 을 회유하는 전 세계 북태평양 바다표범 숫자의 80%에 달한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거리 버스가 반드시 한 번은 휴게소에서 쉬어 가듯 바다표범들은 캘리포니아와 동해의 중간 지점인 프리빌로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새끼를 낳아 기르다 다시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1786년, 태평양 바다표범의 새로운 서식처를 찾아내기 위해 탐험에 나선 러시아 항해가 게라심 프리빌로프 (Gerassim Pribilof)가 이 섬을 발견하고 닻을 내렸을 때, 해안에는 수백 만 마리의 바다표범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당시 프리빌로프 제도는 무인도였다. 러시아인들은 알류샨 열도의 해양 민족인 알류트족을 이곳에 이주시켜 바다표범을 사냥하고 처리하는 작업을 하게 했다. 이들이 오늘날 프리빌로프 주민들의 조상이다.

     하지만 1867년 알래스카가 미국 영토로 바뀌면서 프리빌로프 역시 미국에 편입된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사들이게 된 배경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바다표범 모피 생산지이던 프리빌로프 섬을 차지하려는 욕심도 컸을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바다표범 모피는 황금과 동일한 환금성을 지녔다. 무분별한 도살로 바다표범의 수가 점차 줄어들자 연방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연간 포획 숫자를 3만 마리로 제한했다가 동물 보호론자들의 끊이지 않은 항의에 따라 1983년 해양포유류 국제조약을 앞두고 포획행위 자체를 전면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포획 중지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바다표범 사냥은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년에 한 차례, 6월 말 행해지는 바다표범 사냥을 두고 주민들과 동물 보호론자들 사이에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 외부인의 개입을 꺼려 사냥 장면을 일체 공개하지 않는 섬 주민들을 어렵게 설득해 촬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현장에 동행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지니지 않고 눈으로만 본 포획 현장은 매우 참혹했다. 알류트족 청년들은 긴 나무 몽둥이를 들고 수컷 바다표범들을 한쪽으로 모는 일부터 시작했다. 수컷 바다표범들은 한 놈이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소위 하렘을 형성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감지한 듯 암컷들 사이에 숨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50여마리의 바다표범을 한곳으로 가둔 청년들은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몽둥이를 휘둘러 한 마리씩 도살하기 시작했다. 정수리를 겨냥한 몽둥이는 한치의 실수도 없이 바다표범들을 쓰러뜨려 나갔다. 동물보호론자들이 목격한다면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장면이었다.

     그러나 바다표범 사냥을 잔인한 살륙행위로 규정하고 퍼붓는 비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단호했다. 프리빌로프 알류트족의 모임인 TDX(Tanadagusix)의 수잔 메르콜리에프는 이렇게 말한다. “3백만에 달하던 프리빌로프 바다표범이 멸종 위기까지 몰린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백인들의 무분별한 도살행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자들이 이제 와서 동물 보호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지요. 알류트족의 노력으로 바다표범 숫자가 다시 백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그중 1년에 몇백마리를 사냥하는 것은 생태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바다표범 사냥은 알류트 족의 전통이고 삶의 한 부분입니다. 백인들도 쇠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도살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일년 내내... ” 프리빌로프의 바다표범 사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우리나라 개고기 식용 문화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 Park Jongwoo / OnAsia
http://docu.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