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땅 에토샤에 내린 기적, 동물의 왕국.

혹자는 사막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독히 메마른 땅, 나미비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 풀 한 포기없이 흙과 돌, 모래로만 이루어진 나마비아의 대지는 마치 달세계를 연상케 하는데, 그곳에 바로 건조한 백색의 지대 에토샤 팬이 있다. 소금기가 말라붙은 죽음의 땅, 에토샤 팬에 몇년에 한 번씩 비가 내리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 자연의 기적은 야생동물들의 생명수가 되어 나미비아를 이들의 천국으로 거듭나게 한다.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조물주가 화가나서 만든 나라’ 라고 불릴 만큼 척박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신이 지구에 물감을 칠하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 푸른색을 너무 쓴 나머지 나미비아를 칠하게 될 즈음에는 푸른 물감이 다 떨어져 하는 수 없이 황토색으로 칠했다’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올 정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인 나미브 사마과 칼라하리 사막을 품에 안고 있는 나미비아는 거대한 국토에 비해 전체 국민이 1백6십만 명에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에서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나타낸다. 때문에 언뜻 보면 텅 빈 것처럼 여겨지는 이곳의 진짜 주인은 야생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미비아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인간의 손길로 부터 벗어나 유유자적 거닐고 있는 야생동물과 쉽게 마주치게 된다. 나미비아가 이같이 동물의 낙원이 된 것은 물론 인구가 적은 탓이기도 하지만 야생동물을 보호하려는 정부와 국민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상 최대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마치 거대한 야외 동물원과도 같은 나미비아의 야생동물 보호운동 중심지는 수도 빈트후크로부터 북쪽으로 4백 킬로 떨어진 에토샤라는 이름의 국립공원이다. 2만 평방 킬로의 면적에 1백20여종의 동물과 3백40종의 조류가 관찰되는 에토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 보호 구역이다.

에토샤라는 말은 현지어로 ‘건조한 백색의 지대’ 라는 뜻인데, 이런이름이 붙게된 것은 국립공원 동쪽에 있는 에토샤 팬이라는 거대한 염호 때문이다.

5천 평방킬로에 달하는 에토샤 팬은 오랜 옛날에는 바이칼호나 아랄해처럼 거대한 호수였다. 하지만 기상 변화로 인해 호수의 물을 보내던 물줄기들이 하나 둘 줄어들어 차츰 수면이 낮아지고 수분의 증발량이 가속화되면서, 결국 소금기가 가득 말라붙은 죽음의 땅으로 변하게 되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에토샤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리면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 건호에도 물이 흘러들어 아득한 평야가 호수로 뒤바뀌는 자연의 기적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큰 비가 오면 물길이 되는 오샤나스 개울과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로인 오무람바를 통해, 에토샤 팬에 물이 흘러들어 수심이 얕은 호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호수는 경우에 따라서 물이 고여 있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기도 하는데, 이때가 되면 수만 마리의 플라밍고와 펠리컨이 날아드는 장관이 연출된다.


목마른 야생동물의 생명의 젖줄, 워터홀

에토새 팬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불가사의한 땅이다. 눈길 닿는 지평선 끝까지 한없이 이어지는 건조한 소금의 대지에 태양이 떠오르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신기루가 나타나 머나먼 혹성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에토샤 팬 주변이 지구상에서 가장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이렇게 동물들이 에토샤 팬으로 몰리는 이유는 에토샤 팬의 가장자리를 따라 오무람바오부터 솟아오르는 샘물이 줄지어 있기 때문이다. 워터홀이라 불리는 이 물웅덩이들은 메마른 사막지대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갈증을 식혀주는 젖줄이다. 특히 건기인 겨울철이 되면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떼를 지어 물웅덩이로 몰려든다. 이 떄문에 너비가 3백여 킬로에 달하는 국립공원의 이곳저곳을 힘들여 찾아다닐 필요 없이 물웅덩이 앞에서 기다리고만 있으면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야생동물을 만나게 된다.

에토샤에서 동물 관찰에 가장 좋은 시기는 7~8월경이다. 남반구의 겨울철인 이 기간 동안은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청명한 날이 계속된다. 방문객들은 에토샤 팬 외곽에 만들어진 자동차 길을 따라 차를 운전하며 워터홀 주변으로 떼지어 몰려드는 야생동물을 감상할 수가 있다. 반면 비가 내리는 1월부터 4월까지의 여름철 우기에는 방문객이 끊기고 동물만의 세상이 된다. 황폐한 대지에 무성한 풀이 돋아난서 야생동물들은 물웅덩이를 벗어나 마음껏 사바나 지대의 넓은 초원을 이동하며 풀을 뜯게 된다. 이때야말로 에토샤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새끼를 낳고 키우는 계절이다.


에토샤 국립공원 건설

에토샤 팬의 신비가 처음 유럽에 소개된 것은 진화론을 쓴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갈톤이라는 탐험가가 1851년 이곳을 발견한 다음부터였다. 그 이후 독일이 남서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할 당시 총독이던 린데퀴스트가 급격히 감소하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토샤 팬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자연보호구로 지정하였다. 스위스 국토의 두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사바나 지역이 자연보호구호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야생동물 보호운동이 시작되었다. 나미비아에 유럽인들의 이민이 몰려들면서 많은 목장이 생겨나고 목장주들이 가축에 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사냥함에 따라 보호구를 철망으로 두르고 생물학자를 투입하여 야생동물의 번식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나미비아 정부는 67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선포하고 3개의 캠프를 세워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각각 70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이 캠프 외에 에토샤에는 어떤 인공적인 시설도 없다. 이 3개의 캠프는 관광보다는 환경보호에 더 역점을 두고 있어 엄격한 규칙과 철저한 관리로 유명하다. 가령 차를 몰고 에토샤를 구경하는 방문객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만 공원 내 자동차가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일으키는 먼지로부터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속도를 60킬로미터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에토샤 자연보호구는 70년대에 대서양 해변까지 이어져 있던 전체 구역이 1/3 규모로 대폭 축소되면서, 8백 킬로미터 길이의 울타리가 둘러쳐져 지금의 국립공원 형태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이 울타리로 인해 에토샤의 생태계는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면서 동물들이 물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에토샤의 오랜 전통이었는데, 80년대 들어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자 물웅덩이가 말라버렸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초식동물들의 이동길도 울타리로 인해 막히면서 마실 물을 찾을 수 없게 된 동물들이 죽어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룩된 동물의 왕국


당황한 나미비아 정부가 55군데 지역에 인공 우물을 만들었지만, 이는 오히려 에토샤의 생태계에 악역향을 끼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우물을 파자 얼룩말이나 스프링복 등 떼지어 이 동하는 초식동물이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우물 주변의 모든 풀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루에 한번씩 물을 마셔야 하는 대형 초식동물들은 행동반경이 우물을 중심으로 한 하루거리 이내로 제한되는 한편 목초가 사라져 굶주림에 허덕이는 반면,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사냥이 훨씬 쉬워지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시차를 두고 인공우물을 가동시켜 동물들의 회유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목초지의 풀들을 과다하게 뜯어먹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인근 목장에서 쉽게 퍼질 수 있는 전염병이나 코뿔소와 같은 희귀 동물을 몰래 사냥하는 밀렵 등으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문객들에게는 자연의 경이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흥미진진한 야생동물의 세계를 볼거리로 제공하는 에토샤 국립공원. 그러나 이 같은 동물의 왕국이 유지되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미비아는 ‘세계 최고의 야생동물 보호구’ 라는 찬사를 듣는 에토샤를 키워나가면서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지혜도 함께 배우고 있는 것이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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