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맞바꾸는 달콤한 꿀의 유혹

히말라야의 산신이 내려준 선물일까? 벌집은 정말 신의 손만이 닿을 수 있는 그런 은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깎아지른 100여m높이의 절벽 중간쯤에 직경 1m정도 크기의 벌집 10여개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암벽은 숲이 우거져 밀림을 이루고 있는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접근하기 조차 쉽지 않다.

오솔길을 벗어나 한시간 가량 칡넝쿨을 헤치며 밀림 속을 헤매고서야 15층 아파트 두 개를 합한 것보다 더 높은 암벽을 대면할 수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서서 올려다 보니 벌집들은 흡사 거대한 영지버섯이 피어난 것처럼 보였다. 벌집은 하나하나마다 5만여마리의 벌이 붙어있기 때문에 시커먼 색깔을 띠고 있지만 이따금 벌들이 동시에 연기처럼 날아오르면 꿀을 가득 담은 황금색을 드러낸다.


구룽족의 신성한 ‘꿀 사냥’

석청(石淸)이란 ‘야생벌이 산 속의 나무나 돌에 모아둔 꿀’을 말한다. 만년청(萬年淸)이라고도 불리는 석청은 꿀은 꿀이되 일반 꿀과는 차원이 다른 희귀한 영약에 속한다. 그래서 값도 비싸다. 네팔 히말라야에 가서도 석청을 채취하는 장면을 직접 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석청을 채취하는 날을 미리 알 수는 없다. 히말라야 석청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채취된다. 벌집을 따내는 일은 하루나 이틀만에 끝나는데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로 부족장과 무당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구루’가 벌집의 숙성 상태 등을 감안하며 불과 며칠 안에 그 날을 결정한다. 채취가 너무 이르면 벌집에 꿀이 덜 들어있고 너무 늦으면 벌들이 꿀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벌집을 관찰하다가 적당한 날을 잡는다. 현지에 살고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날을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 주민들이 석청 채취 자체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그 장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석청 채취의 주인공인 구룽족과 셰르파족은 모두 티벳 땅으로부터 히말라야를 넘어와 네팔쪽에 정착한 몽골로이드들이다. 특유의 용맹성과 호전적인 기질로 널리 이름을 떨친 구루카 용병이 바로 구룽족 전사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이다.

이들 구룽족에게 석청 채취는 마치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구룽족은 석청을 채취하는 것을 ‘꿀을 딴다’고 표현하지 않고 ‘꿀을 사냥한다’고 얘기한다. ‘사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석청 채취가 단순한 채집 작업을 능가하는 훨씬 어려운 일임을 암시한다. 벌들이 자기 집을 빼앗아가는 인간에게 필사적으로 덤벼들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에 석청의 채취는 일반적인 식량보충 행위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처럼 보인다.


폴로 신에게 사냥의 성공을 빈다

마을 주민들이 꿀 사냥에 나서기로 한 날 새벽, 동이 트기 전 마을의 지도자인 구루 무사의 집 안마당에 10여명의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바하두르 구룽, 라마 구룽, 나하르 구룽 등 꿀 사냥에 참가하는 이들 구룽족 사냥꾼들은 맨발에 ‘복코’라는 헐렁한 옷을 걸치고 있다. 복코는 넓은 헝겊으로 만든 옷으로, 벌이 달려들면 그대로 머리에 뒤집어쓰게 되어있다. 날이 밝아오면 구루 집 안뜰에서 꿀 사냥 제사가 치뤄진다. 힌두교식으로 치러지는 이들의 제사는 자못 진지하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구룽 마을 주민들은 ‘폴로’라는 신을 경배한다. ‘폴로’는 숲의 신이자 절벽의 신이며, 사냥의 신이기도 하다. 제사를 마친 남자들은 폴로 신에게 제물로 바칠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줄지어 마을에서 3km 떨어진 절벽으로 향한다.

숲의 어귀에 도착한 사냥꾼들은 공터를 골라 움막을 짓는다. 밀림에서 잘라온 나무를 솜씨좋게 다듬어 집을 만들고 솥을 건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제사를 지낸다. 구루가 소중하게 들고온 보자기 안에는 지난 밤 그가 수수 반죽을 빚어 만든 폴로 신의 형상이 들어있다. 구루는 절벽이 보이는 둔덕에 올라가 쥬니퍼 가지에 불을 지펴 연기를 내고 폴로 신의 형상과 달걀, 쌀, 양털 한줌, 수풀 속에서 꺾어온 금잔화 등을 늘어놓은 다음 끝없이 주문을 왼다.

이번에는 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칠 차례다. 염소는 죽음이 닥치고 있음을 직감한 듯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장정 두명이 뿔을 단단히 잡고 있어 역부족이다. 구루가 물을 떠다 염소의 머리에 세 번 뿌린다. 제물을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다. 사냥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라마 구룽이 등 뒤에 구루카 칼을 숨기고 살며시 염소에게 다가가 번쩍 칼을 치켜들자마자 그대로 염소의 목이 땅 위를 구른다. 염소의 목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피를 그릇에 받아든 구루는 절벽을 향해 다시 주문을 왼다.

“폴로 신이시여, 여기 제물의 피를 바칩니다. 이 피를 드시고 사냥에 나서는 우리의 피를 뺐지 마소서.”

구룽 마을 주민들은 신에 대한 의식이 신성하게 치러지지 않으면 절벽에서 사고가 나든가 벌들이 더욱 심하게 공격을 해온다고 믿고 있다. 결국 새벽부터 시작한 의식은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끝난다.


석청 사냥길

“그 검은색 장갑 좀 벗게. 벌들은 검은색만 보면 무조건 달려든다네.”

석청 사냥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구루는 외지인이 사냥에 따라 나서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는 사냥꾼들의 이마에 힌두교식으로 쌀알을 발라주며 행운을 빈다.

제물로 바쳐진 염소를 가마솥에 끓여 모두들 한사발씩 먹고나서 본격적으로 꿀을 따는 작업에 들어간다. 젊은이들이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어디선가 줄사다리를 가지고 왔다. 대나무 줄기를 꼬아 중간중간에 나무 막대기를 끼워넣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저런 사다리로 어떻게 그 높은 절벽에 매달릴 수 있는지 걱정이 될 정도다. 사다리가 바싹 말라있는 상태에서 줄을 내리면 힘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사냥꾼들은 개울물에 사다리를 가져가 계속 물을 퍼붓는다. 물을 먹은 사다리는 무게가 두 배 가량 무거워진다. 이 사다리를 번갈아 등에 메고 절벽 위까지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조심조심 올라간다. 앞장선 구루가 큰 칼로 칡넝쿨과 나무가지를 쳐내면서 길을 낸다.

절벽 가까이에 도착하자 패거리는 둘로 나뉜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꿀을 따는 사람들은 절벽 위로 올라가고 불을 지피고 연기를 내어 벌을 쫓아내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간다. 구루가 일행을 불러모아 다시 한번 주의를 준다.

“조심 조심 접근해야 한다. 모두들 폴로 신에게 행운을 빌어!”

벌써 어디선가 몇 마리의 벌들이 날아와 정찰을 하듯 머리 위를 맴돈다. 가파른 절벽길을 힙겹게 올라 드디어 절벽의 윗부분에 도착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안나푸르나 빙하가 녹아내린 계곡물이 희뿌연 색을 띠고 실낱처럼 절벽아래를 돌아 흐른다. 구루의 명령에 따라 사다리를 절벽으로 내릴 때는 모두들 긴장한다. 사다리가 엄청난 무게를 받기 때문에 7~8명이 줄다리기 하듯 줄을 붙잡고 나무기둥에 의지하여 조금씩 절벽 아래로 내린다. 줄사다리의 길이는 30m정도. 100m절벽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줄사다리 3개를 서로 이어야 한다.

구루는 현장에서 바하두르 구룽을 ‘꿀따기 사냥꾼’으로 지명했다. 절벽을 내려가 벌집을 따오는 꿀 사냥꾼은 일행 가운데서도 가장 몸이 날렵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맡는데 무엇보다도 그날의 운수가 좋아야 한다. 구루는 폴로신이 사냥꾼의 이름을 자기에게 알려준다고 말한다. 꿀따기 사냥꾼이 절벽 중간에서 벌집을 따내는 동안 다른 두세명의 다른 사냥꾼들도 사다리 중간까지 내려가 연락을 맡게 된다. 절벽을 내려가기 위해 낭떠러지 끝에 선 바하두르 구룽은 구루로부터 제사에 쓴 쌀을 받아 공중에 뿌리고 오른손을 이마에 세 번씩 대면서 중얼중얼 주문을 왼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신에게 비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냥이 시작되기 전에 구루가 다시 한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자네는 이제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가게. 여기 있다가는 벌에 쏘여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잊지말게. 검은색을 벌에게 보이면 안돼.”

구루는 검정 색깔의 카메라와 카메라 가방을 못마땅한 듯 보면서 주의를 준다. 절벽 아래서는 사람들이 나무를 한짐 구해와 불을 지핀다. 젖은 잎을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절벽을 타고 무럭무럭 위로 올라간다. 연기가 벌집이 있는 곳까지 닿자 위협을 느낀 벌들이 날아올라 벌집 주위를 군무한다.


성난 벌떼와의 전쟁

드디어 바하두르가 사다리를 타고 벌집이 있는 처마에 까지 도착했다. 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절벽이 튀어나온 처마 밑에 주로 집을 만든다. 사다리가 처마에 걸쳐지면서 바하두르가 아래로 내려서자 그는 벌집에서 3m정도 덜어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바하두르가 긴 휘파람 소리를 내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석청을 사냥하는 동안 사냥꾼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의사소통 수단은 미리 정해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이다. 휘파람 소리의 장단이 신호가 되어 여러 가지 물건들이 줄에 매달려 마치 기계로 움짓이듯 정확하게 절벽 아래 위로 전달된다.

바하두르가 다시 두 번의 짧은 휘파람 신호를 보내자 절벽 위에서 나뭇가지를 한아름 묶은 다발에 불을 붙여 줄에 매달아 아래로 내려 보낸다. 바하두르는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나무 묶음을 받아 익숙한 솜씨로 긴 막대에 걸어 벌집 아래에 갖다 댄다. 절벽 밑에서 올려보내는 연기만으론 벌집에 붙은 수만마리의 벌들을 모두 쫓아버릴 수가 없어 직접 연기를 쏘이는 것이다. 뜨거운 연기가 퍼지자 벌집에서는 난리가 난다.

집에서 쫓겨난 벌들이 날아올라 미친 듯이 주위를 맴돈다. 바하두르는 금세 수만마리의 성난 벌들에게 휩싸여 버린다. 드디어 인간과 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바하두르는 얼굴에 옷을 뒤집어 쓰고 서둘러서 벌집을 따낼 뿐 벌떼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성난 벌떼가 바하두르에게 달려들어 마구 침을 쏘아 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커스단의 곡예사처럼 한쪽 다리를 사다리 사이에 넣어 균형을 잡은 다음 양 손으로 3m 길이의 막대를 분주히 움직여 벌집을 따낸다. 벌집은 반달 모양으로 생겼는데 절벽에 붙어있는 벌집 윗부분에 꿀이 저장되어 있고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산란방으로 애벌레가 들어있는 수천개의 육각형 벌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바하두르는 왼손의 막대기로 줄에 매달린 바구니를 벌집밑에 밀어붙여 흘러내리는 꿀과 벌집을 담으면서 오른손으로 잡은 막대기로는 벌집을 떼어낸다. 오른손 막대 끝에는 새끼줄에 연결된 10cm길이의 나무고리가 달려있다. 막대 끝으로 벌집에 구멍을 내고 이 고리를 밀어 넣어 낚시바늘처럼 걸리게 한 다음 잡아당기면 벌집이 뜯어진다. 이 과정에서 벌집이 두 동강나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밑의 사냥꾼이 얼른 바구니에 주워담는다. 인간에게 집과 꿀을 빼앗긴 벌들은 미친 듯이 윙윙거리며 움직이는 물체만 있으면 달려들어 공격한다. ‘성난 벌떼’라는 말이 실감난다. 히말라야 석청을 만드는 ‘아피스라보리오사’라는 학명의 이 대형벌은 전세계의 수많은 벌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무서운 벌로 알려져있다. 벌집을 수확한 사냥꾼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개선장군처럼 잔잔한 미소와 원시의 평화로움이 감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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