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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슈즈, 열반에 들다

서울 우리 동네에는 헬스클럽이 하나 있다. 시내에서 차를 몰고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유턴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2층에 자리잡은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런닝머신을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주눅이 든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며 사는데 나는 뭐하나. 원래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다고 생각해온 나이지만 요즘 들어 워낙 걷지를 않으니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히말라야에서도 펄펄 날던 내가 요새는 작업실 5층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헉헉대다가 3층에서 한번씩 숨을 고르곤 한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30분 거리를 걸어다녀야겠다고 매번 결심은 하지만 버스만 오면 냉큼 올라타버리고...

그래서....
이번에 인도에 올 때는 가능한대로 많이 걷겠다고 단단히 작정을 했었다.
걷자. 걷고 걷고 또 걷자. 나를 마구 혹사하는 거야.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산티아고의 길인가 뭔가 그거 걸어다니는게 요즘 유행이라는데, 그렇게 일부러는 못해도 기회만 오면 걸어야지.

오릿사주에는 모두 62종류의 소수민족이 사는데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산으로 정글로 2주일간의 소수민족 취재를 끝내고 다시 도로로 나왔을 때 나의 트레킹 슈즈는 그야말로 ‘걸레’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두 짝의 신발이 약속이나 한 듯 악어처럼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를 않는다.
마음씨 착한 동가리야 콘드족 아주머니가 칡넝쿨 비슷한 것으로 묶어주긴 했지만 이미 신발은 요단강 건너가 열반에 들었다.

나미비아 사막, 칠레 파타고니아, 보르네오 정글, 티벳의 응가리... 나와 함께 몇 년동안 온 세상을 누볐던 코오롱 등산화가 오릿사주의 이름 없는 시골에서 드디어 장렬한 전사를 한 것이다. 1주일에 한번씩 북한산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편할 수도 있었을 생이 주인 잘못 만난 바람에 그동안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마음 같아서야 정중한 장례라도 지내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참 안됐다.

시골 장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산 후 트레킹 슈즈를 아쉬운 마음과 함께 길가에 내다 버렸더니 그동안 소수민족 마을을 안내해줬던 바블리가 눈이 동그래진다.

“멀쩡한 신발을 왜 버려요?”
“멀쩡하긴. 밑창이 다 헤졌는데. 저건 고칠 수도 없어”
“윗부분은 멀쩡하잖아요. 밑창만 갈면 되겠는데”

바블리는 등산화에 묻은 흙을 툭툭 털더니 자기 가방에 넣었다.
그려. 버림받은 여인이 새 임자 만난 것처럼 등산화도 새 삶을 찾으면 좋지.
부디 편한 여생 보내기를..... (인도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신발도 잘 알터이지만. 그런데 참, 바블리는 발이 나보다 2센티 이상 크다. 그럼 등산화는 누가 신게 되는걸까?)


Ⓒ Park Jongwoo / OnAsia
http://docu.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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