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 창신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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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옥인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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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신당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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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송월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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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성북동 #3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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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성북동 #2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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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성북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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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삼청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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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삼선동 #5  (Seoul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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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삼선동 #4  (Seoul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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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삼선동 #2  (Seoul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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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삼선동 #1  (Seoul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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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부암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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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무악동 #2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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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 무악동 #1  (Fortress Wall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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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나보이의 야생 양귀비
(Wild Poppy of Navoy, Uzbek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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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0미터에 열리는 길 - 라다크의 도로 건설 노동자 (2)
(Road Construction at 5,000m in Ladakh)
 


라다크의 수도 레에서 북쪽 누브라 지방으로 넘어가는 카르둥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이다. 해발은 자그마치 5600미터. 해가 쟁쨍 내리쬐다가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는 등 하루에도 수십번씩 날씨가 변하고 한여름 기온이 수시로 빙점 아래까지 곤두박질친다. 이곳에 도로를 건설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무더운 인도 평원의 비하르 출신 남자들이다. 비하르주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이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비하르 사람들은 일당 80루피(2천원)를 벌기 위해 자원해서 라다크로 모인다. 평생 동안 저지대의 비하르 주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노동자들은 라다크에 도착하면 처음 한 철은 고소증세에 맥을 못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라다크의 산악도로 건설은 여름철인 7월부터 9월초까지만 가능하다. 나머지 기간 동안 현장은 깊은 눈에 파묻힌다. 그러나 여름철 공사기간 중에도 텐트 내부의 온도는 영하로 떨어지고 식수가 얼어붙는다.

도로 공사는 대개 커다란 돌을 망치로 깨어내 쇄석으로 만드는 작업과 콜타르를 녹여 그 위에 뿌리는 작업으로 나뉘어진다. 작업장에는 언제나 콜타르 태우는 메케한 연기가 자욱하고 인부들의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손과 발, 한 벌씩 지급되는 군복은 콜타르로 뒤범벅이 된다. 물이 귀해 몸을 씻거나 빨래하는 것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 라다크의 도로공사 현장에서 중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곳의 열악한 사정 때문이다. 장비를 사용하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저지대까지 끌고 갈 수가 없어 버릴 수 밖에 없고 짧은 여름철 공사기간이 끝나고 다시 그 자리에 가보면 장비는 이미 고철덩이로 변해있는 것이다.

끝없이 돌을 나르는 시지프스처럼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하는 비하르 노동자들이 하루에 건설하는 도로의 길이는 기껏해야 100미터 정도이다. 티베트어로 ‘라’는 ‘고개’를 말한다. 라다크는 ‘고개가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수많은 고개가 이어지는 라다크. 그 높고 높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비하르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자동차 도로가 조금씩 조금씩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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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0미터에 열리는 길 - 라다크의 도로 건설 노동자 (1)
(Road Construction at 5,000m in Ladakh)
 


평균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는 라다크 북부 지역. 인도와 티베트, 파키스탄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은 황량한 산악사막이다. 히말라야를 넘어오는 바람만이 달의 표면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산허리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뿐이다. 메마른 땅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보이지 않고 거대하게 솟아오른 바위산만이 시야를 가리고 서 있다. 생물체라고는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만이 유일한 이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모여서 일을 한다. 해발 5천미터에 도로를 만드는 히말라야의 도로 건설 노동자들이다.

라다크의 변방 지역은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분쟁, 중국과의 국경 분쟁 등으로 인해 인도정부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이다. 인도 정부는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에 보급물자를 수송하고 고대의 무역로를 복원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악도로 공사를 벌여왔다. 처음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길을 닦았으나 지금은 민간인 노동자들을 선발하여 도로공사에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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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18 - 쇄양성 (Ruins of Tang Dynasty near Dunhuang, Gansu, China)


둔황 근교 안시현에 있는 쇄양성(鎖陽城)은 ‘쇄양’(鎖陽)이라는 사막 식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당나라 시대의 유적이다.

쇄양은 불로초, 또는 사막인삼으로 불리는 약용식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인삼과는 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데 실크로드를 오가는 캐러밴들이 고려 인삼의 약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인삼이란 말을 붙인 듯 하다. 의학적으로 약효가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쇄양이 자라는 곳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에 태종 이세민은 명장 설인귀(薛仁貴)로 하여금 서역에 있는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당나라 군대는 서역을 향해 진군하던 중 고욕성 근처에서 매복중이던 하미국(哈密國) 군대에 포위된다.

엄동설한에 성 안에 갇힌 상태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설인귀는 자생식물인 쇄양의 뿌리와 줄기를 캐어 먹으며 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다.

당태종 이세민은 보고를 들은 후 이들이 겨울을 난 고욕성을 쇄양성(鎖陽城)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지역은 점차 사막화되었고 오늘날의 쇄양성은 인적 끊긴 모래벌판에 버려져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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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17 - 한장성 (Ruins of Han Dynasty near Dunhuang, Gansu, China)

둔황 교외 옥문관 근처에 한나라 시대에 만든 고대 성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한장성이라 부른다.
성이라기보다는 나지막한 담장 같은 인상을 주는 유적이지만 당당한 모습의 성루도 남아 있다.
진나라 시대부터 중국인은 변방에 장성을 쌓는 일에 주력했고 그와 같은 '성쌓기' 기술이 진보하여 만리장성이라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역사를 가능케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진나라에 뒤이은 한나라 시대에 축성한 옥문관의 한장성은 중국대륙을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의 가장 서쪽 끝에 해당한다.

한나라가 번성하던 시기가 언제인가?
기원전 200여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2200년전이다.
서양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너무나 먼 과거의 고대국가이다.
그 한나라 시대에 진흙과 짚을 섞어 쌓아올린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푸라기'란 하잘것 없는 사물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만큼 쉽게 바스러지고 사라져버리는게 지푸라기다.
바로 그 짚을 사용하여 장성을 쌓았다. 
 
농경사회에서 추수를 하고 남은 짚은 오래전부터 여러 용도로 쓰여왔다. 진흙과 섞으면 집을 짓는 훌륭한 건축재료가 되었다. 짚단을 켜켜이 쌓아서 진흙과 섞으면 훌륭한 성벽이 된다.
그런데 2천년이나 지난 짚이 어떻게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바로 건조한 사막기후에 있다. 
메마른 둔황의 기후 속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짚은 돌처럼 딱딱한 화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손으로 그 짚을 만지면 2천여년을 견뎌온 역사가 허무하게도 순식간에 밀가루처럼 부서지면서 바람에 흩날려버린다.
흙 속에 박힌 지푸라기 끝엔 아직도 날카로운 낫으로 베어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2천여년 전 어느 가을, 둔황의 농부가 생각없이 낫으로 거둬들인 그 짚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남아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한가지 의문.
짚이 생산된다는 것은 그 당시 이 지역은 지금과 같은 사막이 아니고 농작물 재배가 가능할만큼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짚은 왜 썩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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