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 #1 (Rath Yatra, The Chariot Festival of Puri, Orissa)
The Essay/The Diary 2008. 7. 5. 15:19 |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의 템플 비즈니스
드디어 라트 야트라 축제가 시작되었다. 오릿사주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 푸리에는 자가나트라는 유명한 사원이 있다. 이 사원에서는 매년 여름 거대한 꽃마차 3대가 3킬로 떨어진 다른 사원으로 9일간 옮겨졌다가 돌아오는 행사가 열리는데 이를 보기위해 수백만명의 순례자들이 푸리를 찾는다.
라트는 꽃마차를, 야트라는 여행을 말한다. ‘꽃마차의 여행’이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라트가 출발하는 날 아침, 사원 앞은 이미 인산인해다. 어떻게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파에 휩슬려 꼼짝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냥 맨몸이라면야 어떻게 해보겠지만 카메라를 두 대나 메고 있으니 참 움직이기가 난감하다.
이미 발바닥은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인파에 떠밀려 다니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쑥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청년의 손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헉, 주머니 속에는 카메라용 CF카드 케이스가 들어있는데, 현금이라면 몰라도 CF 카드 4개를 몽땅 잃어버린다면 나는 끝장이다. 급한 마음에 청년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얄퍅한 옷이 좍 찢어졌다.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청년은 미꾸라지처럼 도망가버리고 내 손에는 찢어진 그의 옷조각만 남았다. 바지를 더듬어보니 CF 카드는 왼쪽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그럼 오른쪽 주머니엔 뭐가 있었더라?
아. 샤워캡이 있었지.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혹시 비가 오면 카메라에 씌우려고 여성들이 샤워할 때 머리에 쓰는 비닐봉지를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청년이 그걸 훔쳐간 것이다. ‘에이 그냥 보내줄걸. 괜히 옷을 찢었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더 이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가려 아무것도 촬영할 수가 없다. 한시바삐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행렬이 지나가게 될 넓은 길 양편에는 3층 짜리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서 옥상으로만 올라가면 되겠다. 그런데 이미 건물 위도 인산인해다. 어디 빈 구석을 찾아야 하는데. 겨우 옥상위의 구경꾼이 좀 적어보이는 건물 앞에 다다라 들어가려하자 건장한 청년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디 가는 겁니까?”
“옥상에요. 사진 좀 찍으려구요”
“안됩니다. 이 건물은 자가나트 사원 소유예요. 사진촬영은 안됩니다.”
“이봐요. 조금 있다가 시작하는 축제 행렬 촬영하려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왔단 말이예요.”
“어쨌든 안됩니다. 마하라지에게 말해보세요.”
청년의 안내로 마하라지를 만났다. 사원에서 소유한 건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내 어깨에 멘 카메라를 힐끗 보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선언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은 안됩니다. 우리가 신성시하는 라트가 지나가는데 위에서 사진 찍게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미 옥상에 TV 카메라가 2대나 설치되어 있고 사진기 들고 있는 사람도 여럿 보이던데요”
“그 사람들은 작년부터 저 자리를 예약한 사람들이요. 당신도 오늘 예약하고 내년에 다시 와서 찍구려”
촬영은 안된다더니 이게 웬말인가?
“그러지말고 좀 봐주세요. 이거 사진 찍으려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왔다구요. 도네이션은 내겠습니다.”
“도네이션?”
마하라지의 얼굴 표정이 순간 누그러지더니 눈 감짝하지 않고 입에서 액수가 튀어나온다.
“5,000루피! (15만원)”
“헉 5천루피? 아니 말이나 됩니까? 너무한거 아니예요?”
“싫으면 어서 우리 건물에서 나가주게. 내년에 와서 찍던가.”
이거 정말 환장하겠군. 건물 밖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야말로 살이 터지는 비명소리가 안에까지 들린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옆건물까지 가기는커녕 그대로 인파에 휩쓸려 떠내려 갈텐데. 절대 저 지옥구덩이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다.
“지금 가진 돈이 없습니다. 200루피로 합시다”
“2000루피!”
한참을 밀고당기다 겨우 500루피에 합의가 되었다.
옥상으로 뛰어올라가는데 청년이 달려와서 ‘2층 이상은 못 올라간다’는 마하라지의 명령을 전달한다.
“돈 냈잖아요?”
“축제날 500루피 받고 옥상에 올려보낸 전례가 없답니다.”
하는 수 없이 옥상을 포기하고 2층 테라스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마침 지방TV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는데 그런대로 각이 나오는 위치다.
꽃마차는 아직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지체 높은 승려들이 기도를 드리러 연신 꽃마차에 오르내리고 있다. 저 순서가 끝나야 비로소 행렬이 움직일 모양이다. TV 카메라맨이 ‘출발하려면 적어도 2시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땡볕에 두 시간을 기다리라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안가지고 왔는데?’
할 수 없이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시 올라왔다.
“마하라지가 사진 다 찍었으면 이제 그만 내려오시래요.”
“사진은 무슨 사진을 찍어. 라트가 움직여야 찍지.”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예 대꾸를 안했더니 이번엔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아까 500루피 받은건 사진 한 장 찍는 값이예요. 라트 움직일 때까지 여기에 있으려면 정말 5천루피 내야해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밑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거든요”
욱.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대접을 받나 후회가 막심이다. 어쩌겠는가 이미 왔는데.
결국 5백루피를 더 빼앗기고 나서야 명실상부한 2층 테라스의 정회원이 되었다.
도네이션 내고 겨우 한자리씩 차지한 불쌍한 영혼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은 사원의 입장으로 보면 1년 중 가장 큰 대목인 것이다.
축제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가 오늘 하루만 1백만명이 넘는다는데 그 사람들 누구나가 다 높은 건물 위에 올라가 편하게 구경을 하려고 애를 쓸 것 아닌가. 수요와 공급에 엄청난 차이가 날 때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자가나트 사원은 푸리 중심가 대로변의 건물을 다수 소유하고 있어서 옥상에 돈을 받고 사람을 올려보내주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도로 맞은편 건물의 2층에는 <자가나트 사원 사무실>(Jaganath Temple Office)과 <기부금 접수실>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고 그 옆에 눈에 확 띄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 있다.
‘기부금으로 비자, 마스터 신용/현금 카드 전부 받습니다. ’
(We accept all VISA, Master Credit & Debit Cards for Donation)
아이고 이놈들아. 그래 그 돈 받아서 전부들 천당가거라.



자가나트 사원의 기부금 안내판, 사원 정문에도 기부금 모집 센터가 있다.
Ⓒ Park Jongwoo / OnAsia
http://docu.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