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인 카자흐들의 이사행렬

바얀울기에서도 가장 서쪽 구석의 알타이 산록.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로 산지초원이 형성된 이곳은 유목생활로 살아가는 카자흐족의 거주지이다. 카자흐족은 1920년대에 중국의 신쟝 위구르 자치구에서 이주해 온 투르크계 소수민족으로, 이들이 많이 모여 사는 바얀얼기 아이막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몽골어와 카자흐어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카자흐족은 몽골의 다른 종족들처럼 유목을 기반으로 살아가지만 언어나 풍습은 크게 다르다.

알타이 산맥 너머는 이들의 본향인 카자흐스탄이다. 그러나 서부 몽골의 카자흐인들은 고향땅의 사람들보다 더욱 카자흐인답게 살고 있다.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가축을 돌보다가도 시간이 되면 말에서 내려 메카를 향해 절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부 몽골의 유목 방식은 몽골의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는 스텝식 유목이 아니고 계절 이동을 하는 산악형 유목이다. 이들은 여름철에는 해발이 높은 산록으로 올라갔다가 추위가 심해지면 저지대에 형성된 동영지로 내려와 겨울철을 보낸다. 대부분의 카자흐족들도 이같은 유목 패턴을 따르는데 최근에는 동영지에 아예 마을을 형성해 베이스캠프로 삼고 초원을 순회하는 반유목 생활을 하기도 한다.

한번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 짧게는 20-30킬로에서 멀게는 100킬로 이상씩 이동하기도 한다. 알타이 산록의 초원에서 길 아닌 길을 달리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카자흐인들의 이사행렬을 마주치게 된다. 여러 가구가 모여 하나의 유목집단을 이루는데, 대가족이 소유한 모든 가축들을 데리고 이동하므로 이들의 이사 장면은 장관을 연출한다. 때로는 그 행렬이 2-3킬로씩 이어지기도 한다.

오치사르의 가족은 가뭄으로 물이 말라서 원래 살던 곳으로부터 남쪽으로 60킬로 떨어진 계곡 초원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다. 네가구 13명이 17마리의 낙타와 6백여 마리의 양, 1백여 마리의 말을 이끌고 이틀간의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남자들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뛰며 가축들의 방향을 인도하고 아낙네들은 텐트와 가재도구를 등에 가득 실은 낙타떼를 몰고 있었다. 말을 타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나무상자에 넣어 낙타 등에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고양이와 함께 상자 속에 앉아 낙타에 매달려 있는 여자 아이는 이미 이같은 생활에 단련이 돼 있어서 그런지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사에 동원된 낙타는 한 마리가 2백여 킬로그램의 짐을 옮긴다. 몽골의 낙타는 혹이 두 개 있는 박트리아 쌍봉낙타이다. 인도나 북아프리카 지역의 낙타에 비해 몸집이 훨씬 더 크고 털이 길어 기품이 당당하다. 매서운 추위도 이겨내는 강인한 박트리아 쌍봉낙타야말로 서부몽골의 유목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오치사르의 가족은 거대한 돌산 사이에 펼쳐진 초원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가를 새로운 야영지로 정했다. 거처가 정해지면 우선 이동식 천막인 게르부터 세운다. 게르는 골조를 이루는 수많은 나무막대기와 이 막대기로 만든 뼈대를 덮는 펠트제의 두터운 천으로 나뉘어진다. 카자흐족의 게르는 다른 몽골인들의 천막에 비해 훨씬 크기고 크고 화려하다. 따라서 구조도 복잡하고 부피와 무게도 훨씬 더 나간다.

가족들은 낙타에서 텐트를 내린 후 남녀노소가 함께 익숙한 솜씨로 집을 만들어 나갔다. 먼저 큰 기둥 두 개를 세우고 나무 막대기를 그물 모양으로 엮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울타리를 둥글게 친 다음 기둥 위에 올린 원형의 천정과 울타리 사이를 80여 개의 긴 나무로 연결했다. 이렇게 해서 틀이 짜여지면 그 위에 펠트로 만든 덮개를 둘러씌우고 하얀 천을 덮은 후 끈으로 둘러매어 고정시킨다. 하나의 게르가 완성될 때 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 게르의 복잡한 구조를 감안하면 놀랄만큼 짧은 시간에 한 가족이 살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곧이어 난로와 연통이 설치되고 불을 지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물이 펄펄 끓고 수태차가 만들어진다. 수태차는 끓는 물에 우유와 짭짤한 맛을 내는 약초는 넣어 섞은 것으로 몽골인들은 쉬지 않고 이 차를 마신다.

“이같은 이동을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 합니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기 때문에 집을 옮기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시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들던 며느리가 야무지게 말했다.

1년에 10여 차례나 이동을 하므로 짐이 많으면 거추장스럽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가재도구는 꼭 필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난로와 식기 몇 가지, 나무 궤짝 서너 개, 이불과 늘상 입는 옷가지 정도가 전부다. 유목민들은 검소함고 더불어 단촐한 살림살이로 유명하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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