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물건도 대접 받는 사연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 없다는 점은 유목민족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 제국도 아무 것도 남긴 것 없이 역사속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대제국의 수도였던 중부 몽골의 카라코람에는 당시 유적으로 작은 돌거북 4개만이 남아 들판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같은 행태는 유목민들의 태생적 검소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목경제의 비자급자족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목민들은 유목생활만을 통해서는 모든 생필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정주사회로부터 물품을 들여오게 되는데 이 때문에 모든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정주문명의 소비세계에 살다 온 사람에게는 이런 광경이 낯설기 마련이다. 게르 주변에서 촬영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난 필름 통을 던져 버렸더니 아이들이 조르르 달려와 얼른 주워 갔다. 하찮아 보이던 필름 통도 여기서는 꽤나 쓸모 있는 물건인 모양이다. 그 뒤로는 꼬박꼬박 필름통을 챙겨두었다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게 되었다.

한번은 오치르에게 서울에서 가져간 양말을 선물로 주었더니 그 포장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비닐봉지 속에서 양말을 꺼내더니 포장용 비닐봉지를 어디다 쓸까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쉽게 찢어지는 양말 포장용 비닐봉지는 내 눈에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작은 바구니를 열더니 신분증명서를 꺼내 이 비닐봉지로 곱게 싼 후 ‘이제는 비를 맞아도 젖을 걱정이 없겠어요’라며 좋아했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물건이 없었다. 1회용 라면을 담는 얄팍한 플라스틱 용기와 참치 통조림 깡통 등등 서울 같으면 매정하게 쓰레기통으로 처박힐 많은 물건들이 요긴하게 사용처를 찾고 제자리를 잡았다. ‘슈퍼마켓에서 쓰레기통을 사서 비닐봉지에 넣어 집으로 들고 온 후 담아온 비닐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는 식의 서구식 소비방식은 이곳에서는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물건은 수명이 다될 때까지 사용되고 수명이 다되도 다시 용도가 바뀌어 마르고 닳도록 쓰여지는 것이다. 게르 안에서건 밖에서건 쓰레기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에게 쓰레기통을 가져다주면 좋은 물건을 담아두는 통으로 고이고이 간직할 것이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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