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say'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08.09.28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예고편, 10월 5일 SBS스페셜 방영
  2. 2008.09.20 삼성건설 UCC 공모전 심사
  3. 2008.09.18 안다만해 수린섬에서의 추석날 밤 (Full-Moon Night at Surin Island, Andaman Sea) 4
  4. 2008.09.15 사진전 <파괴, 그리고 희망> (Blight and Hope: Poverty Seen Through the Lens)
  5. 2008.09.10 유네스코 <꿈꾸는 부엌> 사진전 3
  6. 2008.09.10 2008 동강사진축전 (Dong-gang Photo Festival 2008) #2 - 차마고도 (茶馬古道)
  7. 2008.09.10 2008 동강사진축전 (Dong-gang Photo Festival 2008) #1 - 차마고도 (茶馬古道) 2
  8. 2008.09.05 2008 BCWW - 제8회 국제 방송영상 견본시 (Broadcasting World Wide 2008)
  9. 2008.09.05 KBI 2008 국제공동제작 서울워크숍
  10. 2008.09.05 찌라시 & Kitsch #03 - 예수천국 불신지옥
  11. 2008.09.04 대한산악연맹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 우간다 르웬조리 등반 (Rwenzori Mountains, Uganda)
  12. 2008.08.29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동화 - 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3 2
  13. 2008.08.29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동화 - 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1
  14. 2008.08.29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동화 - 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2
  15. 2008.07.30 오릿사의 정글을 원없이 걸었네
  16. 2008.07.07 인도 오릿사주 콘드족 새우잡이 소년 (Prawn Catching Boy of Khond Tribe, Orissa, India) 1
  17. 2008.07.07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사향지로(麝香之路) 제작노트
  18. 2008.07.06 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 #2 (Rath Yatra, The Chariot Festival of Puri, Orissa)
  19. 2008.07.05 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 #1 (Rath Yatra, The Chariot Festival of Puri, Orissa)
  20. 2008.07.04 푸리 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Puri, Orissa)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예고편, 10월 5일 SBS스페셜 방영

오늘 아침부터 10월 5일 <SBS 스페셜>에 방영될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프로그램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다음주에 방송될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일주일만에 완성시켜야 한다. 기네스북에 기록될 일이다. 허둥대다가 완성도가 떨어지면 안되는데... ㅠㅠ



 
Ⓒ 2008  Indivision & Andrew Testa


주제음악 <Ocean Gypsy >
by Blackmore's Night
 Ⓒ Blackmore Productions, Nesconset, Long Island, NY. U.S.A.
연주 : 리치 블랙모어
노래 : 캔디스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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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건설 UCC 공모전 심사

지난달 삼성건설 UCC 공모전 1차 심사에 이어 직접 두바이에 다녀온 3팀의 작품에 대한 2차 심사를 진행했다. 마침 타일랜드에 출장중이라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전달받아 심사를 했다. 대학생들의 수준 높은 동영상 제작 솜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총평>
삼성건설 UCC 공모전 2차 심사에 올라온 연세대학교 이슬, 이화여자대학교 한보람, 동아대학교 김응현, 세 학생의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높은 경쟁률의 1차 심사를 통과한 후 직접 버즈두바이까지 가서 제작한 이 작품들에는 한국인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세계최고층 건물 버즈두바이를 직접 방문한 학생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잘 녹아 있었다.

연세대학교 이슬 양의 <사막에 핀 꽃>은 두바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간 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작위적인 연출이 눈에 거슬렸다. 누구나 다 아는 랜드마크인 버즈두바이를 화면에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면서도 엄마가 준 지도를 들고 반대방향으로 찾아다니는 모습, 4년만에 만난다는 아버지와 함께 건설현장을 잠시 둘러보고 손을 흔들며 다시 헤어지는 설정 등은 당위성을 반감시켰다.

이화여자대학교 한보람 양의 <꽃이 핀 사막에 가다>는 공모전 응모 과정을 컴퓨터 화면을 따라가며 박진감 있게 표현한 도입부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다양한 자막의 사용으로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했으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마지막 스크롤에 Glory to the lord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이 영상이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던 점이다.

동아대학교 이응현 군의 <사막에 핀 꽃>은 건축학도로서 버즈두바이에 가진 꿈과 열정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완벽에 가까운 편집 테크닉과 적절한 음악의 사용으로 지루하지 않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그래픽과 함께 세계 고층건물들을 이퀄라이저로 표현한 아이디어도 좋았다. 다만 문법에 맞지 않는 자막이 세군데 눈에 띄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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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핀 꽃> by 연세대학교 이슬
버즈두바이를 건설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두바이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 현지까지 간 딸의 시선으로 풀어낸 시도가 좋았다

 

<꽃이 핀 사막에 가다> by 이화여자대학교 한보람
영화제작 기법에서 배워온 듯한 여러가지 시도와 함께 스틸 사진과 비디오 영상의 적절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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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핀 꽃> by 동아대학교 이응현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건축물 버즈두바이에 대한 꿈과 열정을 잘 표현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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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만해 수린섬에서의 추석날 밤 (Full-Moon Night at Surin Island, Andaman Sea)


안다만해 수린섬에 도착한 날이 마침 추석이었다.
해가 지자 수평선 위로 아름다운 한가위 보름달이 솟았다.
바다가 달빛에 반사되어 금빛 물결을 일으켰다.
D90 카메라로 달빛만을 이용하여 촬영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테스트를 위해 ISO 3200에 15초의 노출로 촬영을 했다.
밤10시에 촬영한 사진이 마치 대낮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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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D90, AF-S Nikkor 24-70mm F1:2.8G ED       M 15",  F4,  ISO3200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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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파괴, 그리고 희망>
(Blight and Hope: Poverty Seen Through the Lens)


  

외교통상부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함께 9월 17일부터 28일까지 숙명여자대학교 청파갤러리에서 국내외 저명한 사진작가 16명이 참여하는 국제사진전 ‘파괴, 그리고 희망: 사진작가가 본 빈곤(Blight and Hope: Poverty Seen Through the Lens)'을 개최합니다.

이번 사진전에는 주명덕, 박종우, 성남훈, 강제욱, 오상택, 조세현 등 국내작가 6명과 크리스토퍼 라마르카, 싸이먼 노포크, 피터 비아로브체스키, 마커스 블리스데일, 아그네스 더비, 야오 루, 스테파니 쿠켄달, 앤드류 테스타, 하이디 브래드너, 폴라 브론스테인 등 해외작가 10명의 ‘빈곤 문제’을 주제로 한 작품 80여점이 전시됩니다.  이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서 빈곤을 야기하는 다양한 배경과 빈곤이 초래하는 파괴적인 결과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향 등이 조명될 예정입니다.

외교통상부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우리 문화 콘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기존의 문화행사에 더하여, 올해부터 빈곤ㆍ인권ㆍ환경 등 인류 공통의 관심사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외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바, 이번 사진전은 이러한 ‘글로벌이슈 문화외교사업’의 일환입니다.  17일 오후 5시 숙명여대 르네상스플라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개막식에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주한 외교단, 빈곤 관련 NGO 등이 참석하며, 자선음악단체인 ‘뷰티플마인드(Beautiful Mind)'의 공연도 열릴 계획입니다.

이번 사진전은 국내 전시 이후, 10월 21일부터 11월 4일까지 영국 런던 소재 주영한국문화원에서도 개최되며, 이후 베트남 등으로 순회 전시될 예정입니다. 이번 작품전은 문화예술적 성취와 함께 글로벌이슈에 대한 우리나라의 책임의식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의지를 표현하는 유용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참여작가: 총 16명 (국내 6명, 해외 10명)
     - 국내: 주명덕, 박종우, 성남훈, 강제욱, 오상택, 조세현
     - 해외: 크리스토퍼 라마르카(미국), 싸이먼 노포크(나이지리아), 피터 비아로브체스키(독일), 마커스 블리스데일(노르웨이),
                
아그네스 더비(프랑스), 야오루(중국), 스테파니 쿠켄달(미국), 앤드류 테스타(영국), 하이디 브래드너(미국),
               
폴라 브론스테인(미국)

○ Participating Artists:
    
Peter Bialobrzeski, Marcus Bleasdale, Heidi Bradner, Paula Bronstein, Seihon Cho, Agnes Dherbeys,
    
Myung Duck Joo, Jea-Uk Kang, Stephanie Kuykendal, Christopher LaMarca, Yao Lu, Simon Norfolk,
    
Sang Taek Oh, Jong-Woo Park, Nam-Hun Sung, Andrew Testa

 Panel Discussions with Professor Colin Jacobson and other Photographers
    
22 October 2008, 6:30 pm, Korean Cultural Centre UK
    
Venue: Korean Cultural Centre UK 
   
 Topic: “Photographic Journalists’ views on Global Issues
    
Participants: Heidi Braner (Participating Photographer)
     Jon Levy (Editor-in-Chief of 8 Magazine) and others

 
An international photography exhibition on the topic of global poverty will be held at the Korean Cultural Centre UK, from 21 October to 4 November 2008, under the title of "Blight and Hope: Poverty Seen Through the Lens," hosted by the Korean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and organized by the Korea Foundation.

 The exhibition is supported by the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 the British Council, the Korean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and a broad spectrum of other organizations spanning both the private and public sectors.

The exhibition is a powerful mix of photography that aims to carry a strong message on poverty to a wider audience. The exhibition showcases contributions from sixteen prominent photographers from countries such as China, Germany, Korea, Norway, Thailand, the United Kingdom, and the United States. The artists focus on the subject in many different ways - sometimes with a scientific and methodological mind, other times with raw emotions, ruthlessly exposing poverty'smany faces.

Poverty is both a cause and result of war, disease, environmental degradation, alienation and victimization, and many other afflictions faced by humankind. Nevertheless, we can discover hope by acting decisively against poverty and envisioning an ideal worl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made a concerted commitment to promote global efforts to eradicate extreme poverty and hunger eight years ago, when it came up with the Millenium Development Goals(MDGs). 2008 marks the mid-point at which we must determine how far we are from these Goals. We hope that the exhibit, the brainchild of a global partnership between artists, policymakers, academics, and many other stakeholders, will generate deeper awareness of poverty and constitute a small step in the efforts to reach the Goals.


'Poverty threatens our security and even our lives, destroys communities, and undermines cultures and traditions, freedom and human dignity. Sixteen photographers from all over the world expose the cruel faces of poverty while at the same time presenting a vision of hope'

-
Yu Myung-hwan,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This exhibition comes at a time when all our collective efforts are needed to achieve the MDGs. Exhibitions like this one allow us all to connect on a human level to the people behind the MDGs, and remind us of the importance of keeping our promises to them.'
- Kemal Derviş, the UNDP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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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꿈꾸는 부엌>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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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대륙(sub-continent)이라고 불리는 인도. 그 넓고 넓은 땅덩이 전체를 커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부엌을 통해서 본 아시아 문화' 프로젝트의 인도편에서는 전통 문화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앞으로 곧 사라져버릴 오지를 우선적으로 골라 취재하기로 했다.

3주간 일정에서 선정한 지역은 북동부 나갈랜드주와 중부의 오릿사주였다. 그러나 나갈랜드주는 반정부단체의 무장활동으로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 인도에서 가장 많은 종족이 사는 동부 해안의 오릿사주만을 취재 대상으로 정했다.

오릿사주에는 62개 소수민족이 산다. 해안의 부족들은 주로 고기잡이를 하지만 내륙 깊숙한 정글의 소수민족은 숲의 나무를 잘라 불을 내고 거기에 농사를 짓는 화전농법, slash and burning으로 작물을 경작한다. 소수민족의 가옥에는 부엌이라 부를만한 곳이 따로 없었다. 어두운 집안 구석에 작은 화덕이 하나 덩그마니 놓여있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식사는 대개 집 바깥에서 했다.

각 소수민족의 풍습이나 옷차림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부엌 문화와 식사 문화는 대개 비슷비슷했다. 사진가의 눈길을 끈 것은 오히려 부엌 자체보다 그 부엌까지 음식 재료들이 들어오는 과정이었다. 소수민족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을 했고 부족한 물품은 대개 7일장에서 구입하였다. 이 시장은 중요한 음식공급원이자 온갖 정보의 생산지이고 그나마 작은 돈을 만져볼 수 있는 판매의 장이기도 했다.

장에 물건을 내다팔기 위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멀게는 30여 킬로의 거리를 맨발로 걸어가는 아낙네들의 끝없는 행렬, 시장으로 가는 길은 오릿사주의 정글 곳곳에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몬순의 빗속에 정글을 헤매며 소수민족들의 마을을 돌아보고 장터를 쏘다닌 2주일, 산에서 내려오자 멀쩡하던 등산화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졌다.

오릿사 주 정글에서는 최근 엄청난 규모의 보크사이트 광상이 발견되어 수년 내에 많은 알루미늄 광산과 제련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따라 소수민족들의 생활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소수민족의 7일장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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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동강사진축전 (Dong-gang Photo Festival 2008) #2 - 차마고도 (茶馬古道)


올해 동강사진축전이 준비되는 동안 인도 취재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주최측과 착오가 생겨 전시 사진에 차질이 빚어졌다. 아래의 사진들은 원래 전시하기로 했던 사진들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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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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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茶馬古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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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전부터 두 개의 길이 중국 대륙과 서아시아를 이어왔다.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크로드이다. 또 다른 길은 중국 남부에서 티벳을 지나 인도를 거치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는 차마무역이 이뤄지던 옛길이다. 중국 윈난성과 쓰촨성에서 생산된 소금과 차를 티베트, 인도 등지로 실어나르던 말 캐러밴의 이동로인 차마고도는 오래전부터 중국 남부의 험난한 산악과 협곡 지대를 모세혈관처럼 이어주던 고대의 문명교역로였다.

차마고도의 중심부인 캄 지역은 중국 정부가 외부에 공개를 꺼리는 마지막 미개방 구역으로, 메콩강, 살윈강, 양쯔강 등 3개의 대하가 협곡을 이루며 나란히 흐른다고 하여 삼강병류(三江竝流), 또는 동방대협곡(東方大峽谷)으로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야생차는 원래 티벳과 중국 사이의 캄 지역이 원산지이다. 육식을 주로 하는 티벳 고원의 유목민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마셔왔다. 특히 당나라 때부터 불기 시작한 티벳인의 차 마시기 열풍은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는 차마무역을 대대적으로 촉진시켰다. 중국은 국방과 운송에 반드시 필요한 말의 수요를 차마무역을 통해 보충했다.

그 차마무역이 이뤄지던, 실낱같은 교역로가 바로 차마고도이다. 문명교역로로서의 차마고도는 중국과 티벳 사이의 서로 다른 문명과 문화가 전파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쓰촨성과 윈난성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차는 마방이라 불리는 보부상을 통해 티벳의 라싸까지 운반되었다.

마방(馬帮)은 ‘말무리를 이끄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사막의 캐러밴과 같은 운송조직이자 상업집단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마방들은 엄격한 조직의 통제아래 길을 떠난 후 반년 정도의 풍찬노숙 끝에 고향에 돌아왔다. 오늘날 이같은 진정한 마방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봄철과 가을철에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마방만이 남아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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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국제 방송영상 견본시 (Broadcasting World Wide 2008)




매년 BCWW가 열릴 때마다 서울에 있지 않아 참가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출장을 가지 않게 되어 도대체 어떻게 진행이 되는 행사인지 살펴보려 했다. 마침 국제공동제작 워크샵이 진행되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바로 옆 KOEX에서 BCWW가 열리니 교통도 편하다..

그런데 웬걸, 국제공동제작 워크샵이 얼마나 타이트하게 진행이 되는지 감히 KOEX까지 다녀올 수가 없었다. 겨우 공동제작 워크샵이 끝난 후 BCWW로 달려갔더니 한시간 전에 폐막하고 철거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에구 망했다.

다큐멘터리 유통회사인 에브리쇼의 클레어 홍 글로벌 마케팅 팀장을 만나서 차 한잔 하고 (실은 커피숍도 철수 중이라 차는 못마시고 앉아만 있었다.)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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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I 2008 국제공동제작 서울워크숍


한국영상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한 2008년 국제공동제작 서울워크숍에 이틀 동안 참가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내 나름대로는 국제적으로 공동 제작을 하려고 -써놓고 보니 거창하네- 애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처음으로 제도권의 시스템 안에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워크샵의 수준은 아직 멀었다. (관계 공무원님들, 아무도 안보시겠지)
특히 사회주의 국가에서 참여하신 외국 대표님들, 아무 생각들이 없어서 속으로 많이 웃었다.
그러나 이런 단계를 계속 거치다보면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의미의 국제공동제작에 점점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멀리 브라질에서 날아온 나의 카운터 파트, TV Brazil의 조세 짐머만 국제관계국장은 워크샵 참가 인사중 가장 나은 사람으로 보였다. 평생을 현장에서 뛴 PD이자 영화감독 출신이라 관료 냄새 물씬 풍기는 다른 나라 아저씨들과 달라 마음에 들었다. 물론 매우 날카로운 점도 있어서 앞으로 같이 일하려면 땀 좀 흘리게 생겼다.  
나와 보사노바 음악을 좋아하는 공통점도 있어 친하게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올 겨울에는 브라질에서 살아야 하는데 거기는 한여름. 에구 걱정이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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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라시 & Kitsch #03


KOEX에 가려고 간만에 지하철을 탔더니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빨간 글씨로 인쇄된 '불신 지옥'이라는 글귀가 내 눈을 파고든다. 나같이 죄많은 인간이야 어차피 천당 갈 일이 없겠지만 거기다가 '불신'이라는 죄까지 덮어써야 할 모양이다. 이제부터라도 '맹신'으로 갈아타면 그 많던 죄가 좀 탕감되려나~~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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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산악연맹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 우간다 루웬조리 등반
(Rwenzori Mountains, Uganda)



어제는 하루종일 대한민국 청소년 오지탐사대의 우간다 르웬조리 산군 최고봉 마르게리타 산 등반 다큐멘터리를 편집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한 세대 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들.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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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동화 - 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방송일시 : 2008년 8월 31일 밤 11시 20분


■ 기획의도

현대문명의 공간, 현대인의 삶 속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아시아의 정서와 아시아적 상상력을 현상 속에 숨어있는 본질을 통해 찾는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적 시선에 오랜 세월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투명하게 녹아있는 전래 이야기들이 오버랩 되는 독특한 화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지구상에서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히말라야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테라이(네팔 남부 대평야지대) 사람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땅'이라는 시선으로 네팔이라는 나라를 바라본다. 테라이 사람들과 히말라야 사람들의 오래된 지혜와 정서 속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제한속도 없이 내달리는 현대인의 삶, 우리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준다.

 

■ 프로그램 내용

▣ 에피소드1. - 풍요로운 대평원 테라이를 지켜온 사람들의 '신을 웃기는 지혜'

시속 12킬로미터의 행복

네팔 남부에는 대평원 지역-테라이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산을 볼 수가 없지요. 테라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발해 인도를 오가는 기차가 있습니다. 네팔의 유일한 기찻길입니다. 네팔 테라이 기차, 아마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일 겁니다. 이 기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12킬로미터. 지붕에도 기차 머리에도 사람들이 걸터앉아 가죠. 테라이 기차는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에서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주지요. 우리나라의 기차에서는 차창밖 풍경이 그저 스쳐지나갑니다.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때도 많고요. 그런데 테라이 기차에서는 그 삶의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마음에 찍힙니다. 최고 속도 시속 12킬로미터. 테라이 사람들의 삶의 속도입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삶의 속도는 대체 얼마일까요?

신을 웃기는 사람들

테라이 논 가운데 아주 예술적인 마을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벽면에 독특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집에 그림을 그리면서 예쁘게 장식을 하죠. 비의 신인 인드라 여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비의 신은 테라이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테라이 사람들은 가뭄이 오면 비의 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을 했죠. 비의 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집을 장식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오랜 세월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마음이 빚어낸 독특한 상상력을 만나는 것은 아주 큰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성들만 그림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왜 여성들만 그리는 걸까요?

테라이 파수꾼

끝없이 펼쳐진 평야- 테라이 사람들의 삶의 풍경은 우리네 농촌과 다를 바 없습니다. 테라이 사람들이 평생을 함께 하는 동물이 있죠. 물소입니다. 뿔 아래 당나귀 귀와같이 커다란 귀를 늘어뜨린 물소는 쟁기질 하고 수레를 끌고, 땔감으로 쓰일 배설물을 주고 테라이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그리고 아이들에겐 친구이자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죠. 테라이 사람들은 물소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테라이 사람들의 마음에 물소는 범도 물리치는 힘을 지녔다고 믿고 있죠. 그런데 물소는 언제부터 어떻게 함께 테라이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대지-테라이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 에피소드2.
-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친구 되는 지혜 '

야크 추적자

히말라야.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막을 깨우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들려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방울소리였습니다. 소리는 해발 5,6 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을로 안내했습니다. 그 곳에서 소리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히말라야 심장을 가졌다는 녀석들, 야크였습니다. 야크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의 오래된 교역로를 따라 인도와 네팔, 티베트를 오가며 물건을 나릅니다. 그들의 주인은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곳일까요?

설인 예티

협곡과 고개마다 히말라야 사람들만이 아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두려움에 대한 기억들입니다. 언제 어떻게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히말라야 대자연의 힘 앞에선 그 누구라도 무릎을 꿇게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은 수 천 년을 이 험준한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두려움과 친구가 되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두려움과 친구가 된다! 두려움의 빛깔, 냄새, 소리를 알고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한다고 히말라야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혹시 설인 예티를 아시나요? 히말라야의 전설적인 괴물, 두려움의 상징이죠. 히말라야 사람들은 설인 예티와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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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동화를 만나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SBS스페셜'은 31일 오후 10시20분 '다큐멘터리 동화'라는 다소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네팔-느린 시간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네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면서 중간중간 애니메이션적인 기법을 가미해 다큐멘터리에서 한발 벗어나 사색의 시간을 안겨준다.

제작사 낙미디어는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 사라져가는 것들을 느끼게 하고 하고 싶다는 의도로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 '동화'라는 타이틀을 붙였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히말라야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테라이(네팔 남부 대평야 지대) 사람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땅이 네팔"이라며 "이곳 사람들의 오랜 지혜와 정서를 통해 제한속도 없이 내달리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한다.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테라이의 한 작은 마을에는 시속 12㎞의 속도로 인도를 오가는 기차가 있다. 지붕에도 기차 머리에도 사람들이 걸터앉아 간다. 기차를 통해 테라이 사람들의 삶의 속도를 읽을 수 있다. 테라이 논 가운데에는 예술적인 마을이 있다. 집집마다 벽면에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 놓는데, 마을 사람들은 비의 신인 인드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1년에 한 번 집을 그림으로 예쁘게 장식한다.
 
이곳 사람들은 가뭄이 오면 비의 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여성들만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히말라야에는 이곳 사람들만이 아는 이야기들이 있다. 대부분은 두려움에 대한 기억인데 히말라야의 전설적인 괴물인 설인 예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히말라야 사람들은 두려움의 빛깔, 냄새, 소리를 알고 친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히말라야 사람들의 시간과 계절은 야크와 함께 흘러간다. 1년에 한번 야크 털을 깎는 날, 야크 치즈를 만드는 날, 1년에 한 번 고기를 얻기 위해 야크를 잡는 날 등으로 시간은 구분지어진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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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제작편집을 마치고

오늘 오후 내내 SBS 종합편집실에서 모레 SBS스페셜에 방영될 <네팔, 느린 시간의 기억> 제작편집을 했다.
연합통신 기자가 '다소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라는 촌평을 단 이번 작품은 정말로 이제까지 우리나라 방송에서 다루던 다큐멘터리와는 좀 거리가 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종합편집실의 감독과 엔지니어들도 머리를 갸우뚱.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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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편집 중 오디오 싱크가 맞지 않아 작업이 중단된 사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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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슈즈, 열반에 들다

서울 우리 동네에는 헬스클럽이 하나 있다. 시내에서 차를 몰고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유턴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2층에 자리잡은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런닝머신을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주눅이 든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며 사는데 나는 뭐하나. 원래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다고 생각해온 나이지만 요즘 들어 워낙 걷지를 않으니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히말라야에서도 펄펄 날던 내가 요새는 작업실 5층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헉헉대다가 3층에서 한번씩 숨을 고르곤 한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30분 거리를 걸어다녀야겠다고 매번 결심은 하지만 버스만 오면 냉큼 올라타버리고...

그래서....
이번에 인도에 올 때는 가능한대로 많이 걷겠다고 단단히 작정을 했었다.
걷자. 걷고 걷고 또 걷자. 나를 마구 혹사하는 거야.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산티아고의 길인가 뭔가 그거 걸어다니는게 요즘 유행이라는데, 그렇게 일부러는 못해도 기회만 오면 걸어야지.

오릿사주에는 모두 62종류의 소수민족이 사는데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산으로 정글로 2주일간의 소수민족 취재를 끝내고 다시 도로로 나왔을 때 나의 트레킹 슈즈는 그야말로 ‘걸레’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두 짝의 신발이 약속이나 한 듯 악어처럼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를 않는다.
마음씨 착한 동가리야 콘드족 아주머니가 칡넝쿨 비슷한 것으로 묶어주긴 했지만 이미 신발은 요단강 건너가 열반에 들었다.

나미비아 사막, 칠레 파타고니아, 보르네오 정글, 티벳의 응가리... 나와 함께 몇 년동안 온 세상을 누볐던 코오롱 등산화가 오릿사주의 이름 없는 시골에서 드디어 장렬한 전사를 한 것이다. 1주일에 한번씩 북한산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편할 수도 있었을 생이 주인 잘못 만난 바람에 그동안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마음 같아서야 정중한 장례라도 지내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참 안됐다.

시골 장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산 후 트레킹 슈즈를 아쉬운 마음과 함께 길가에 내다 버렸더니 그동안 소수민족 마을을 안내해줬던 바블리가 눈이 동그래진다.

“멀쩡한 신발을 왜 버려요?”
“멀쩡하긴. 밑창이 다 헤졌는데. 저건 고칠 수도 없어”
“윗부분은 멀쩡하잖아요. 밑창만 갈면 되겠는데”

바블리는 등산화에 묻은 흙을 툭툭 털더니 자기 가방에 넣었다.
그려. 버림받은 여인이 새 임자 만난 것처럼 등산화도 새 삶을 찾으면 좋지.
부디 편한 여생 보내기를..... (인도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신발도 잘 알터이지만. 그런데 참, 바블리는 발이 나보다 2센티 이상 크다. 그럼 등산화는 누가 신게 되는걸까?)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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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릿사주 콘드족 새우잡이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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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새우를 잡는 콘드 족 소년들




어둑어둑해질 무렵 콘드 족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섰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한 소년이 호수에 나룻배를 띄워놓고 무엇인가 잡느라 열심이다.

“어이, 너 뭐 잡니?”
“새우요”
“몇 마리 잡았는데?”
“3마리요”
“그거 내가 사자”

말은 안 통하지만 손짓몸짓으로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눴더니 소년이 배를 대고 펄떡펄떡 뛰는 큼직한 새우 3마리를 들고 왔다. 민물새우지만 우리나라 안면도 대하보다 더 크다.




012

먹음직스럽게 생긴 민물 새우



대나무로 만든 통발에 떡밥을 넣고 호수에 담가두었다가 해질 무렵 통발을 올리면 새우가 잡힌다. 오늘은 3마리 뿐이지만 평소엔 20여 마리씩 잡는다고 한다.

“전부 얼마 주면 되지?”
“15루피(450원) 주세요”
“뭣? 너무 비싸잖아?” 눈을 부라렸더니 소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그럼 10루피만 주세요”
“아니야. 내가 장난으로 말한거다”

나룻배 다루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배를 저어 본 사람만이 안다.
한 마리에 10루피씩 쳐서 30루피(900원)에 3마리를 샀다.
새우가 너무 깨끗하고 귀엽게 생긴 것이 먹기가 아깝다.
하지만 어쩌리. 이 깊은 산중에서 너 말고는 먹을게 마땅치 않은데...
그나저나 요리를 어떻게 할꼬? 구워도 맛있겠고 커리에 비벼도 좋겠고 튀겨도 그만이겠는데... 한 마리에 요리 한가지씩 해볼까?

동네에 들어와 단 한 군데 있는 식당을 찾아 주인에게 새우를 건넸더니 알 수 없는 양념을 섞어서 내왔다. 어쨌든 맛이 그만이다.



동네에 하나 있는 식당. 인도 문자와는 완전히 다른 오릿사주 문자인 오리야(Oriya)어로 표기가 되어 있다.



새우를 먹은 식당의 주인 아저씨. 식당 테이블 두 개를 붙여 그 위에 엎드린 채, 10살짜리 아들을 시켜 소리를 질러가며 새우 요리를 만들었다. 간이 좀 짰지만 겁이 나서 짜다는 말을 못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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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지로(麝香之路) 제작노트



               박 종 우 (인디비전, gangdo@gmail.com)


수년전 중국과 우리나라의 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중국 신화통신을 전재한 기사였다.


  최근 고고학적 조사에 의해 서부 티벳의 응가리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던 사향지로가 발견되었다. 샨시성 고고문물연구소의 장지엔린 박사는 이 길이 고대의 상업도로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문화, 종교, 외교, 군사 교류의 중요한 통로라고 주장하였다.

  로마제국은 서기1세기 때부터 참도-라사-응가리-서아시아를 통하여 티벳에서 많이 생산되는 사향을 교환했다. 그래서 이 길은 사향지로라고 불린다. 장지엔린 박사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이 응가리에서 발견한 각종 석기 중에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북아프리카와 유럽 원시문화의 전형적인 석기형태가 있었는데 이는 이 길이 구석기,신석기 시대 때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응가리의 북부를 탐사한 고고학자들은 3-4천년 전의 암각화에서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는 낙타와 타조의 그림도 발견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사향지로가 융성했던 시기는 10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초까지의 코카왕국 때였다.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동서양 사이의 종교와 문화도 사향지로를 통하여 교류되었다. 코카의 사원과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목재, 옷감과 기타 물건을  교역하는 풍경이 묘사되어 있으며 굴 안에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마른 살구와 살구씨가 쌓여 있다.  코카의 왕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인도에 사신을 파견하여 불교를 학습시켰고 한 동굴에서는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성경의 훼손된  페이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20여년전 히말라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부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산길을 오가는 캐러밴의 모습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주민도 만나고 등반객도 마주치지만 무엇보다도 말이며 야크에 물건을 잔뜩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캐러밴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특히 안나푸르나 봉이 솟아있는 네팔의 칼리간다키 계곡에 가면 수백 마리의 노새들이 물건을 싣고 줄을 이어 산길을 오르내리는 광경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자동차가 닿는 도로에서부터 무스탕 지역까지의 멀고 먼 산길은 현지인들이 ‘동키 트레인’이라고 부르는 노새 캐러밴에 의해 닦여진 길이다. 나는 엄청난 양의 여러 가지 물건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이 길을 다니면서 산악지역 사람들이 벌이는 교역의 활기에 놀라곤 했다. 칼리간타키 무역에 종사하던 안나푸르나 마낭 마을 사람들은 히말라야 무역에서 터득한 장사 수완을 바탕으로 수십년 전부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로 진출했고 엄청난 거부로 성장한 사람도 많다. 히말라야를 오가면서 나는 언젠가 그곳의 민초들이 벌이는 물물교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1997년 가을, 나는 네팔 서부의 돌포 지역에 갔다가 그 유명한 소금 캐러밴을 만났다. 돌포의 살당과 비제르가온이란 두 마을은 여름철에 산 너머 티벳 푸랑 지역에 있는 캬토 총라, 마윰 총라 등의 시장으로 가서 티벳 응가리 지역의 염호에서 가져온 소금을 구입한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산맥을 넘어 네팔의 힌두교도들에게 소금을 야크로 운반해주는 일을 해왔다. 1997년은 히말라야 설역 문화권의 교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해이다. 그해 히말라야 북쪽 너머에 있는 티벳의 소금호수에서는 행정명령에 의해 유목민들의 소금 채취가 금지된다. 전통적으로 티벳의 응가리에서 히말라야 산록까지 소금을 나르던 팔라 유목민들은 소금 채취를 못하게 되고 염호의 출입마저 금지되었다. 그때부터 염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소금을 채취해서 트럭으로 국경시장까지 운반하기 시작했다. 소금호수까지 도로가 뚫렸고 유목민들의 캐러밴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히말라야 남쪽의 돌포 지역에서도 같은 해 수백년간 이어져온 소금 캐러밴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다.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에릭 발리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 네팔의 소금 캐러밴을 소개하면서 내가 돌포에 가 있던 바로 그 무렵에 프랑스 영화팀을 데려다 사전답사를 하고 상업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소금과 곡식을 부피에 따라 1:1로 바꾸는 물물교환으로 살아가던 현지 주민들은 일당을 받고 영화 촬영에 고용됐고 자신들의 소금캐러밴이 돈을 받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 후 인도양의 값싼 소금이 네팔의 산악지역까지 들어오면서 더 이상 티벳의 소금이 필요 없게 되었지만 이들은 세계각지에서 찾아오는 사진가나 영화제작자들을 위해 전통적으로 소금을 나르는 방식을 겨우 유지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돌포의 험한 고개인 카그마라 라에서 처음으로 소금캐러밴을 만났을 때 나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 가족으로 이뤄진 캐러밴 가운데 며느리가 고개를 넘기 직전 출산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침이면 태어난지 보름밖에 안된 그 작은 아기를 중국제 비료 푸대에 집어넣고 야크 등에 얹어 노끈으로 칭칭 동여맨 후 야크를 출발시킨다. 그러면 아이를 태운 야크는 하루 종일 소금을 나르는 다른 무리들과 산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에야 캠프에 도착하는데 그때서야 엄마는 울다 울다 지친 아이를 꺼내 비로소 젖을 물리는 것이다. 그 모습은 그동안 보아왔던 전체 히말라야 문화권의 수많은 장면 가운데 가장 깊숙하게 나의 뇌리에 파고들었던 이미지였다. 그 아기가 이제는 어엿한 소년이 됐을 터. 나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났는지 궁금했고 그 아이를 다시 찾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카트만두에 갈 때마다 돌포의 캐러밴들을 만나 태어난 후 보름 지났을 때 촬영한 아이와 엄마의 사진을 가지고 수소문을 했다.


소금 캐러밴을 마친 돌포 사람들은 12월이면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티벳 사원인 보드나트에 모여 겨울을 보내곤 한다. 보드나트 사원 근처에 프랑스 영화 <캐러밴>의 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돌포 캐러밴 출신의 티렌 론둡이 사는 집이 있다. 그는 영화가 세계적인 히트를 친 후 일년의 절반은 카트만두에 와서 지낸다. 나는 카트만두에 가면 언제나 티렌의 집에 들러 제대로 된 캐러밴을 함께 촬영해보려 얘기하곤 했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틈틈이 이어지던 히말라야 교역루트의 취재는 2003년부터 본격적인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해 봄, 나는 산악인 엄홍길의 등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가 있었다. 히말라야 8000미터 14봉 완등에 성공한 엄홍길은 북쪽 티벳에서 에베레스트에 오른 후 남쪽 네팔로 내려오는 역사상 최초의 히말라야 종단 등반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엄홍길은 ‘너무 많은 눈이 쌓여 있어 네팔쪽 하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무전을 보내고 티벳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최초의 에베레스트 종단 등반은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티벳에서 네팔까지 히말라야를 종단하여 넘는 것은 문화교류사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네팔의 쿰부 히말라야에 거주하는 셰르파족은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원래 티벳 동부의 캄 지방에서 서쪽으로 난 무역로를 따라 움직이던 캄파 출신이다. 차마고도 무역로의 주인공인 캄파는 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그중 일부가 에베레스트 옆의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 오늘날 네팔의 남체바자르 마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엄홍길이 티벳 쪽으로 돌아내려간 그날 오후,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앞에 솟아 있는 칼라파타르 봉에 올랐다. 에베레스트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이 봉우리는 또한 티벳과 네팔을 이어주던 옛 교역로인 로라 라는 고개가 마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로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6천미터가 넘는 고개였으나 오래전에 일어난 대형 눈사태로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해져 더 이상 고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칼라파타르 봉 꼭대기에서 촬영을 하던 나는 뜻하지 않게 세계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를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도 1988년 같은 장소인 쿰부 히말라야에서 트레킹 중 그를 만났던 적이 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바위 위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낭파라를 다뤄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꺼냈다. 낭파라. 해발 5,800미터의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길고 긴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나 있는 많은 고개 중 진정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마지막으로 남은 고개가 바로 낭파라이다. 오래전부터 낭파라에 대한 관심은 많았으나 말썽 많고 탈도 많은 티벳 국경에 걸쳐 있어 감히 접근을 생각해보지 않은 곳이었다. 낭파라는 세계 제6위봉인 초오유 중턱을 끼고 티벳과 네팔을 연결하는 험난한 고개이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초오유 등반 중 낭파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고개를 넘었고 낭파라에 관한 책까지 출판했다고 했다.


2004년부터 중국 쪽에서 차마고도를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어서 네팔에는 자주 들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2005년 차마고도의 서쪽 루트를 취재하며 티벳에 들어가게 되어 낭파라의 길목인 팅그리 마을을 자주 지나다니게 되자 낭파라를 넘어보고 싶은 열망이 살아났다. 중국 윈난성에서 티벳 라사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를 2006년 여름까지 촬영한 다음 나는 곧장 서부 티벳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는 교역루트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2007년 봄 SBS에서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캄’ 2부작을 방영한 직후 ‘히말라야의 의사’ 임현담 님이 <사향지로>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담고 있던 제목이라 즉각 사향지로라는 이름을 걸기로 했다. 마침 ‘히말라야의 화가’ 다정 김규현 선생이 사향지로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사실도 알게 됐다. 카트만두에서 살다가 경기도 포천에 들어와 있는 시인 고철 김홍성 형의 집에서 임현담 님을 만나 작전회의(?)를 하고 그동안 촬영해두었던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 바로 카일라스부터 시작해 수틀레지 강을 따라 인도로 넘어가는 사향지로의 메인루트 촬영에 돌입했다.


원래 사향지로(Musk Road)라는 이름은 중국의 고고학자들만 사용해오던 명칭인데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원이던 샹샤칭 박사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 연구교수로 가서 발표한 논문에 등장하면서 서방세계에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2007년의 촬영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4월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5명의 중국계 미국인이 현수막을 걸고 티벳 독립을 외치다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국은 전체 티벳 국경지역에 외국인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티벳의 국경지대에 들어가려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가운데 인민해방군사령부에서 발행하는 외국인 통행허가서의 발행이 완전 중단되었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에 명운을 걸고 있는 중국은 국경지대를 아예 폐쇄함으로써 혹시 있을 수도 있는 티벳 독립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여름철에는 티벳 푸랑과 네팔 돌포를 잇는 국경교역로의 통행이 사전예고 없이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티벳의 캬토총라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줄줄이 산을 넘던 돌포의 캐러밴들은 영문도 모르고 국경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7월에 북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지방에서 촬영 중 몬순에 발목이 잡혀 촬영 일정이 늦어진 나는 최소 4주가 걸리는 네팔-티벳간 캐러밴 취재에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팔의 동료 카메라맨을 돌포로 보냈었는데 4주 후에 팀과 합류하려고 티벳으로 들어갔다가 그가 국경을 못 넘고 되돌아간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국경의 폐쇄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는 거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히말라야를 직접 넘어 티벳의 시장까지 취재하기 위해 그동안 티벳 쪽의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공을 들였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관한 취재가 실패하여 11월초에 프로그램을 방영하려던 계획도 수개월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취재를 끝냈지만 ‘최초로 낭파라 촬영 성공’이라는 뜻밖의 수확도 거둘 수 있었다. 국경 부근 통행이 철저히 금지된 상황에서 인민해방군 국경수비대의 좋은 사람을 만나 그토록 원하던 낭파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국경 출입을 허가해준 그 장교는 새로운 임지를 발령 받아 다음 달이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데, 그가 떠난 후 앞으로 외국인이 낭파라에 다시 갈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히말라야의 교역로를 취재하면서 나는 그 거대한 산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새로운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됐다. 사람이 사는 곳엔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선 언제나 교역이 이루어졌다.

히말라야를 넘은 나의 취재루트는 이제 산맥의 남쪽을 향하게 된다. 오랫동안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된 북인도의 킨나우르, 스피티, 라하울 지방과 라다크의 룹슈, 누브라, 잔스카르 지방, 캐시미르와 파키스탄의 발티스탄 지방이 그 무대다. 길이 이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사라져가는 히말라야 사람들의 한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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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 #2 - 들것에 실려간 많은 사람들


사원 앞 건물 2층 테라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경찰들이 군중을 통제한답시고 마구 사람들을 밀치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꼬락서니가 영 보기가 싫다.

인도 경찰은 라티라고 부르는 긴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는데 그걸 가지고 사람을 때려가며 질서를 잡는다. 물론 워낙 인파가 많으니 어떤 식으로든 통제는 해야겠지만 저건 좀 너무하다 싶다.

그보다 더욱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경찰 간부, 고위공무원, 장성 등 소위 VIP들이 납시는 풍경이다.
모자에 붉은 술을 단 병정(군인인지 경찰인지는 잘 모르겠다)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면서 나무껍질을 둘둘 말아 만든 몽둥이를 휘두르면 (여기에 맞으면 야구방망이나 다듬이질 방망이로 맞은 것보다야 덜 아프겠지만 이것도 역시 몽둥이는 몽둥이다) 주변의 인파가 맞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순간적으로 공간이 생겨난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에 20여명의 병정이 밧줄을 사방으로 둘러친 채 VIP와 그 가족들을 안에 모시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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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때려가며 VIP 가족을 모시고 다니는 경찰과 군인들



VIP 혼자만 오면 그나마 이해가 갈텐데 인도의 많은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외 없이 식솔들을 한 패거리 거느리고 온다. 수백만명이 모여 부대끼고 있는 한가운데로 이들 VIP 가족들이 화려한 사리를 나풀나풀 날리면서 들어오는 풍경은 쇼킹하기까지 하다.

참 인도 사람들 착하다. 다른 나라 같으면 저 꼴 못볼텐데. 그 오랜기간 영국 식민지배를 받고 그러면서도 비폭력 운동을 얘기한 민족이 아닌가. 인도에서 혁명 얘기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VIP 가족들은 행사장 앞에까지 나와 간단히 푸자(기도의식)를 드리고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면서, 군중을 패대기치면서 온 길로 되돌아간다. 저들은 기도 하면서 무엇을 빌었을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잘 살겠다고 저 짓을 하면서까지 여기 와서 기도를 하나.

인파에 떠밀려 비명을 질러대는 힘없는 민중들은 모두들 비쩍 말랐는데 저 인간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저렇게 배가 튀어나오고 디룩디룩할까. 내 손에 새총이나 물총이 들려있다면 그냥 한방씩 날리고 싶다.

에구, 내가 체 게바라도 아니고 홍길동이나 일지매도 아닌데 왜 이리 흥분할까. 음 아까 빼앗긴 1천루피가 아까워서 그런가보다.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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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기절해서 들것에 실려나가고...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수라장이란 바로 이런걸 말하는구나 싶다.
열흘간의 축제가 시작되는 그 첫날, 내 눈 앞에서 1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나갔다.
인파에 깔려서, 더위를 먹어서, 물을 못 먹어서, 꽃마차를 보고 너무나 감격해서... 사람들이 기절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인도에선 축제가 벌어지면 으레 인명사고가 나니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잘 마련해둔것 같다.
누군가가 쓰러지면 들것을 들쳐맨 5분대기조가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헤치고 와서 환자를 싣고 앰뷸런스로 달려갔다.

오늘 들것에 실려간 사람들 모두 기운을 차려야 할텐데...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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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포스팅 한 다음날 지역 신문에 ‘라트 야트라 축제장에서 인파에 깔려 6명 사망, 60여명 중상‘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고 난 사람들 대부분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종교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일텐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희생자들이 하늘나라에 가서는 좋은 곳에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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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 라트 야트라 축제의 템플 비즈니스



드디어 라트 야트라 축제가 시작되었다. 오릿사주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 푸리에는 자가나트라는 유명한 사원이 있다. 이 사원에서는 매년 여름 거대한 꽃마차 3대가 3킬로 떨어진 다른 사원으로 9일간 옮겨졌다가 돌아오는 행사가 열리는데 이를 보기위해 수백만명의 순례자들이 푸리를 찾는다.

라트는 꽃마차를, 야트라는 여행을 말한다. ‘꽃마차의 여행’이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라트가 출발하는 날 아침, 사원 앞은 이미 인산인해다. 어떻게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파에 휩슬려 꼼짝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냥 맨몸이라면야 어떻게 해보겠지만 카메라를 두 대나 메고 있으니 참 움직이기가 난감하다.

이미 발바닥은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인파에 떠밀려 다니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쑥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청년의 손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헉, 주머니 속에는 카메라용 CF카드 케이스가 들어있는데, 현금이라면 몰라도 CF 카드 4개를 몽땅 잃어버린다면 나는 끝장이다. 급한 마음에 청년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얄퍅한 옷이 좍 찢어졌다.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청년은 미꾸라지처럼 도망가버리고 내 손에는 찢어진 그의 옷조각만 남았다. 바지를 더듬어보니 CF 카드는 왼쪽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그럼 오른쪽 주머니엔 뭐가 있었더라?

아. 샤워캡이 있었지.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혹시 비가 오면 카메라에 씌우려고 여성들이 샤워할 때 머리에 쓰는 비닐봉지를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청년이 그걸 훔쳐간 것이다. ‘에이 그냥 보내줄걸. 괜히 옷을 찢었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더 이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가려 아무것도 촬영할 수가 없다. 한시바삐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행렬이 지나가게 될 넓은 길 양편에는 3층 짜리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서 옥상으로만 올라가면 되겠다. 그런데 이미 건물 위도 인산인해다. 어디 빈 구석을 찾아야 하는데. 겨우 옥상위의 구경꾼이 좀 적어보이는 건물 앞에 다다라 들어가려하자 건장한 청년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디 가는 겁니까?”

“옥상에요. 사진 좀 찍으려구요”

“안됩니다. 이 건물은 자가나트 사원 소유예요. 사진촬영은 안됩니다.”

“이봐요. 조금 있다가 시작하는 축제 행렬 촬영하려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왔단 말이예요.”

“어쨌든 안됩니다. 마하라지에게 말해보세요.”

청년의 안내로 마하라지를 만났다. 사원에서 소유한 건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내 어깨에 멘 카메라를 힐끗 보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선언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은 안됩니다. 우리가 신성시하는 라트가 지나가는데 위에서 사진 찍게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미 옥상에 TV 카메라가 2대나 설치되어 있고 사진기 들고 있는 사람도 여럿 보이던데요”

“그 사람들은 작년부터 저 자리를 예약한 사람들이요. 당신도 오늘 예약하고 내년에 다시 와서 찍구려”

촬영은 안된다더니 이게 웬말인가?

“그러지말고 좀 봐주세요. 이거 사진 찍으려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왔다구요. 도네이션은 내겠습니다.”

“도네이션?”

마하라지의 얼굴 표정이 순간 누그러지더니 눈 감짝하지 않고 입에서 액수가 튀어나온다.

“5,000루피! (15만원)”

“헉 5천루피? 아니 말이나 됩니까? 너무한거 아니예요?”

“싫으면 어서 우리 건물에서 나가주게. 내년에 와서 찍던가.”

이거 정말 환장하겠군. 건물 밖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야말로 살이 터지는 비명소리가 안에까지 들린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옆건물까지 가기는커녕 그대로 인파에 휩쓸려 떠내려 갈텐데. 절대 저 지옥구덩이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다.

“지금 가진 돈이 없습니다. 200루피로 합시다”

“2000루피!”

한참을 밀고당기다 겨우 500루피에 합의가 되었다.

옥상으로 뛰어올라가는데 청년이 달려와서 ‘2층 이상은 못 올라간다’는 마하라지의 명령을 전달한다.

“돈 냈잖아요?”

“축제날 500루피 받고 옥상에 올려보낸 전례가 없답니다.”

하는 수 없이 옥상을 포기하고 2층 테라스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마침 지방TV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는데 그런대로 각이 나오는 위치다.

꽃마차는 아직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지체 높은 승려들이 기도를 드리러 연신 꽃마차에 오르내리고 있다. 저 순서가 끝나야 비로소 행렬이 움직일 모양이다. TV 카메라맨이 ‘출발하려면 적어도 2시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땡볕에 두 시간을 기다리라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안가지고 왔는데?’

할 수 없이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시 올라왔다.

“마하라지가 사진 다 찍었으면 이제 그만 내려오시래요.”

“사진은 무슨 사진을 찍어. 라트가 움직여야 찍지.”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예 대꾸를 안했더니 이번엔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아까 500루피 받은건 사진 한 장 찍는 값이예요. 라트 움직일 때까지 여기에 있으려면 정말 5천루피 내야해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밑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거든요”

욱.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대접을 받나 후회가 막심이다. 어쩌겠는가 이미 왔는데.

결국 5백루피를 더 빼앗기고 나서야 명실상부한 2층 테라스의 정회원이 되었다.


도네이션 내고 겨우 한자리씩 차지한 불쌍한 영혼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은 사원의 입장으로 보면 1년 중 가장 큰 대목인 것이다.

축제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가 오늘 하루만 1백만명이 넘는다는데 그 사람들 누구나가 다 높은 건물 위에 올라가 편하게 구경을 하려고 애를 쓸 것 아닌가. 수요와 공급에 엄청난 차이가 날 때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자가나트 사원은 푸리 중심가 대로변의 건물을 다수 소유하고 있어서 옥상에 돈을 받고 사람을 올려보내주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도로 맞은편 건물의 2층에는 <자가나트 사원 사무실>(Jaganath Temple Office)과 <기부금 접수실>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고 그 옆에 눈에 확 띄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 있다.

‘기부금으로 비자, 마스터 신용/현금 카드 전부 받습니다. ’
(We accept all VISA, Master Credit & Debit Cards for Donation)

아이고 이놈들아. 그래 그 돈 받아서 전부들 천당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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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나트 사원의 기부금 안내판, 사원 정문에도 기부금 모집 센터가 있다.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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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 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Puri, Ori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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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10시 정각, 캘커타 하우라 (Howrah) 중앙역. 밤 11시45분 출발 예정인 푸리 행 야간 열차, Puri Express가 보무도 당당하게 22번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정시 출발예정임을 애써 자랑하는듯한 목소리의 방송이 쩌렁쩌렁 역 구내에 울려퍼진다.
'햐. 인도 참 많이 발전했네. 기차가 정시에 출발을 다 하고...’
최근 브릭스다 뭐다 해서 인도의 경제 발전을 칭송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이렇게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는구나. 이제는 열차 자리 잡는 일만 남았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표가 아닌 RAC 예약권, 열차가 만석이라 그나마 어렵게 구한 것이다. RAC(Reservation Against Cancellation)란 말하자면 ‘현재는 만석이지만 누군가가 예약을 취소하면 너에게 우선적으로 자리를 주겠다’는 철도청의 약속이다. 이같은 약속이 얼마나 헌신짝처럼 버려지는가는 그간의 인도 여행 경험을 통해 익히 숙지하고 있으므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쓰기 전에 열차 차장으로부터 재빨리 좌석을 확보해야만 한다.
“발목이 삐어 서 있을 수가 없어요.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앉아있을 수도 없구요...”
“얼마전 맹장수술을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장거리 열차 탈 일 있으면 반드시 누워 가야 한다고 했어요. 아니면 재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여러 가지 거짓말을 만들어서 예행 연습을 한 다음 비장한 얼굴 표정을 짓고서 RAC 종이를 차장에게 내밀며 눈치를 살폈다.
“오늘 다행스럽게도 예약 취소가 많아 자동적으로 침대칸이 배정되었습니다...”
에구 싱거워라. 툭하면 거짓말 할 궁리나 해대는 습관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할 텐데....
2등석 에어컨 침대차에 그럴듯한 자리를 잡았다. 차장이 외국인이라고 깨끗한 시트를 가져다주고 고맙게도 이것저것 신경을 써준다. 장마철이라 남들은 건조가 덜 되어 눅눅한 시트를 받아들고 투덜거리는데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별로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다) 뽀송뽀송한 새 시트를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푸리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500킬로가 넘습니다”
거리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침대칸에 누워 뒹구는 동안 기차는 열심히 달릴 테니까
“그게 아니고 푸리에 내일 새벽 몇 시에 도착하지요?”
“걸리는 시간은 모릅니다. 지금 예정으론 내일 저녁 9시 도착인데, 더 늦을 수도 있어요...”
“뭐라고욧?(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What!!이라고 했다) 500킬로 가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평소 루트와는 다른 경로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에서 안동 가는데 전라도 나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정시 출발이라고 좋아했더니 이번엔 도착시각이 고무줄이로구나.
‘그러면 그렇지. 인도 기차가 별 수 있나’ 아까의 감동은 사라지고 못된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캘커타에서 푸리로 출장 간다는 옆자리 신사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 지방에서 캘커타에 도착하는 기차가 하나도 제시간에 들어온게 없습니다. 이 기차는 마침 캘커타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정시 출발이 가능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몬순 때문입니다”
몬순으로 인해 온 사방에 홍수가 나고 철길이 끊어져 기차들이 요리조리 철길 끊어진 곳을 피해 다닌다는 것이다.
여름철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언제나 듣게 되는 말“몬순 때문입니다”
‘몬순 때문이라. 천재지변인데 어쩌겠는가?’
이번 여행에서도 얼마나 자주 이 소리를 듣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열차 출발하고 열두시간 동안이나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났더니 배는 고픈데 먹을게 없다. 당연히 먹을 것을 파는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 옆자리 신사가 부시럭 부시럭 신문지를 펼쳐 뭔가를 꺼내 드시는데 먹어보라는 소리가 없네. 에구 꼬르륵
노트북을 꺼내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여행하며 생전 안 쓰던 일기를 쓰는 것도 다 몬순 덕분이다. 한참 자판을 두드리다보니 우리의 푸리 급행, Express란 표기가 선명한 이 열차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어딘가에 또 정차를 하더니 움직일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몬순의 무거운 구름이 지평선을 가렸다.
열차 가는 길 앞쪽에서 갑자기 철로가 끊어지면 그 다음엔 어쩌지? ’
방정맞은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다시 잠이나 자자. 24시간 내로 푸리에 도착하길 기도하면서...


Ⓒ Park Jongwoo / 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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