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US Jet crash-lands in Hudson River, New York)
ⓒ The New York Times
상파울루로부터 10시간을 날아와 뉴욕에 도착, 맨해튼 미드타운의 허드슨 호텔에 짐을 푸는데, 호텔 바로 앞 허드슨 강에 여객기가 불시착했다고 법석이다. CNN에서 브레이킹 뉴스로 현장을 중계하고 있다. ‘사상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현장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진짜 장관’이다. 수십톤에 달하는 무게의 여객기가 강물에 둥둥 떠 있고 비행기 날개 위에 사람들이 올라서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 이상 멋진 그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평소 같았으면 카메라 둘러메고 바로 현장으로 뛰었을테지만 브라질에서 입던 얇은 옷차림에 이날 뉴욕의 기온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2도였다. 여름옷 입고 허드슨강 칼바람 맞을 생각을 하니 끔찍스러워서 현장 취재는 참기로 했다. 내가 뭐 현직 신문기자도 아니고....
후배 사진가 이상엽 군이 쓰나미 닥쳤을 때나 태국 군부 쿠데타 났을 때 내가 마침 현장에 있었다고 ‘억세게 운이 좋은 사진가’라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운이란게 취재를 해야 생겨나는 것이지 사진을 안찍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바로 눈 앞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는데 단지 춥다는 이유로 호텔방에 퍼질러 있다니...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강변으로 나가볼까 했으나 비행기는 이미 허드슨 강을 따라 떠내려가 9.11 테러가 났던 세계무역센터 앞까지 흘러가버렸다. 퇴근시간에 거기까지 택시 타고 가려면 20불 이상 나올텐데.... 왕복이면 50불. 에구 그냥 없었던 일로 해야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여객기가 기러기떼를 만나면서 새들이 비행기의 양쪽 제트엔진으로 동시에 빨려들어가 사고가 났다는데 참 어이없는 일이다. 미국 미디어에서는 사고기의 조종사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느라고 야단법석이다. 그럴만도 한게 초고층 빌딩이 가득 들어찬 맨해탄 상공에서 엔진에 불이 붙은 비행기를 간발의 차이로 허드슨 강 위로 몰고가서 조지 워싱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강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선박들도 피해서 마치 백조가 사뿐히 수면에 내려앉듯(?) 대형 여객기를 물 위에 착륙시켰다니 칭찬을 수만번 받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조종사에게 정작 고마워해야할 당사자는 사고기를 보유한 US에어웨이즈다. 이 항공사는 경영이 악화돼 작년부터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커피, 음료수까지 돈을 받아 이미지가 나빠져 있던 회사였다. 비행기가 시가지에 추락하여 큰 사고가 났으면 파산으로 갔을 텐데 일약 최고의 조종사를 갖춘 믿음직한 항공사로 이미지를 일신했다. 사고기 조종사가 기자회견에서 전혀 잘난척 하지 않고 ‘나는 그저 평소 훈련받은대로 했을뿐’이라고 날린 멘트도 항공사에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종사 영웅 만들기에 뛰어든 미디어들의 행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공군사관학교 시절 줄곧 수석이었다’는 얘기에다 ‘평소부터 과묵하고 믿음직스러웠다’는 주변의 코멘트, ‘불시착 비행기 조종사가 그라는 사실을 안 순간 그 친구라면 당연히 그같은 실력을 발휘할 줄 알았다’는 동료 조종사의 말, ‘조종사가 사고기에서 빠져나올 때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있어 감탄했다‘는 뉴욕시 부시장의 멘트까지 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언제나 비슷하다. 조종사의 캘리포니아 자택에는 TV중계차를 비롯하여 기자부대가 들이닥쳐 ’조종사가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 비행기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는 등 온갖 시시콜콜한 사실을 다 들쳐내고 결국은 그의 가족이 고양이 한 마리와 누런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기르는데, 그 개 이름은 트윙클이라는 기사까지 보도가 되었다. 쯧쯧 불쌍해라. 사건기자들.
몇해 전에 부상당한 야생조류 몇 마리 살리는 일 때문에 미국의 온 미디어가 난리를 치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번 사고를 일으킨 기러기떼 중 여러마리가 죽었을텐데 그걸 얘기하는 언론은 한군데도 없다. ‘차제에 공항 주변의 야생조류를 싹쓸이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미디어는 상황에 따라 마구 변신하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 결국 허드슨 강에는 나가보지도 못하고 호텔 방으로 배달된 신문을 촬영했다. OTL
ⓒ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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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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